저 달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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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달을 보면서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1.02.23 14:32
  • 호수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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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空卽是色) 38

 

라도현 교도화정교당
라도현 교도
화정교당

정월 대보름이 돌아왔습니다. 한밤중의 저 달은 옛날 같으면 스스로 빛을 발하면서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신비한 신앙의 대상이었겠지만, 요즘도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과거 오랫동안 상식에 속했으나 지금은 그저 옛이야기로 남은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지금은 믿을 수 없겠지만, 옛날에는 아침에 가게 문 열고 첫 손님이 여자면 그날은 재수가 없다고 주인이 가게 앞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밤에 잠을 잘 때 동쪽을 향해서 머리를 두고 자는 것이 좋다고 했고, 누군가 돼지 꿈을 꾸면 다음 날 좋은 일이 생긴다든지, 이사를 할 때는 손 없는 날 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버리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WHO가 ‘인정’하는 미신화된 가짜뉴스에 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코로 소금물을 들여 마셨다가 뱉으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예방되고, 마늘을 먹거나 메탄올을 마시면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는 뉴스, 심지어 미국과 유럽에선 5G 인터넷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서 5G 시설 신축을 반대하는 시위까지 일어났다고 합니다.

진실을 알고 보면 우습지만, 모르는 사람에겐 실제로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WHO는 “우리는 에피데믹(전염병)과 싸우고 있을 뿐 아니라, 인포데믹(정보전염병)과도 싸우고 있다”고 한답니다. 그러면서 최근 ‘미신 박살팀(Myth Busters)’을 구성했다죠.

돌아보면 인류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의심 없이 믿었던 것들이 많았는데, 가령 일식과 월식은 하늘이 내리는 재앙의 전조였고, 지진이나 화산의 분출은 땅의 신이 크게 노한 모습이었습니다. 바다에서 용오름이 보이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중이었고, 흙비(황사비)가 내리면 괴이한 일이 생길 전조였습니다. 심한 가뭄은 왕의 실정 때문이어서 임금이 직접 하늘에 제사를 올려 잘못을 빌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러한 미신을 믿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종교의 믿음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했는데, 아무리 ‘종교적 방편’이라 할지라도 한 번 믿었다 하면 죽더라도 영원히 그 믿음을 변치 않는 수가 많았습니다.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알라신을 믿지 않는 이교도는 죽여도 된다는 급진 무장단체의 믿음이나,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고, 마귀가 눈앞에 나타날 때는 십자가를 보이면 도망간다는 믿음 등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진리입니다.

불상을 향해서 소원을 빌면 부처님의 가피로 이뤄진다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의 두렵고 나약한 마음을 달래는 심리적 방편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2천 년을 이어온 등상불 신앙을, 우리 원불교는 부처의 마음자리인 일원상 신앙으로, 진리적이고 사실적으로 바꾼 최초의 교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또 동그라미에 집착하고마는 우리의 믿음은, 진리적 종교라는 자부심을 부끄럽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깊이 스며있는 기복적 미신에 대해 말하자면, 아마 기독교에서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만큼이나 반발을 부를 것입니다. 방편을 줄이고 진리를 설하면 종교가 배를 곯고, 진실한 가르침을 줄이고 방편을 늘리면 불보살의 참 제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불조(佛祖)의 천경만론은 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대종경> 성리품25장)고 하였습니다. 불법을 배운 지식인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를 알고 있다고 해서 다들 미신을 버리고 참다운 믿음을 낼까요?

둥근 보름달을 보거든 한 번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경전에서 가리키는 손가락 말고, 바로 저 ‘달’을 보라는 가르침을 나는 정말 믿고 있는가.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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