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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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 이여진 교도
  • 승인 2021.03.09 17:06
  • 호수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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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칼럼
이여진 강남교당 교도<br>서울교사회장<br>
이여진 강남교당 교도
서울교사회장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꿈틀거리고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면 봄이 오듯이, 큰 건물에 후보자의 대형 현수막이 늘어져 있고 여기저기 공약이 난무하면 선거가 다가온 것이다. 이때가 되면 어디서 번호를 입수했는지, 일면식도 없는 후보자로부터 문자나 톡이 날아온다. 국정 운영을 잘 하겠노라고, 그러니 한 표 달라고 말이다. TV 토론이나 지하철, 또는 시장 어귀, 심지어 목욕탕에서도 어르신들의 때를 밀어드리며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노력이 치열해진다. 공식적인 선관위 벽보가 붙고 각종 선거홍보 책자가 집으로 배달된다. 하지만 SNS에 떠돌아다니는 이러저러한 말들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유권자 표심의 향방을 가르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때로는 선거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전에 선거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후배가 다시는 정치인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꽤 올곧은 사람으로 알려졌던 정치인이라 캠프에서 허드렛일을 열심히 도와주었단다. 그런데 선거 날이 임박했을 때 사용하기 위해 상대후보에 대한 흑색선전 문구를 몇 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기획해 만들어 놓는 것을 보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흑색선전은 대부분 의혹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번 의혹이 제기되면 대중은 때로는 벌떼같이, 때로는 들쥐같이 달려들어 마구 물어뜯는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것도 있고, 파헤쳐보니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반면 실제보다 부풀려진 경우도 있고 전혀 근거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이미 악의적 여론이 압도적으로 형성되면 당사자가 아무리 항변해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선거는 코앞에 와 있으니 당사자가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를 한다 해도 ‘사후약방문’인 셈이다. 선거라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공격에 해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각종 루머와 인신공격에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어버리기 일쑤이다. 설사 나중에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졌다 해도 ‘아님 말고’식의 일이 되어버린다. 낙선인의 행적에 대해 사람들은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표현의 자유나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나 국민의 알 권리 등을 앞세워 개인의 인권을 마구잡이식으로 난도질하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 덩달아 각종 루머도 우후죽순 생겨난다. 특히 최근 몇 년 우리 사회는 각종 의혹 제기와 이에 대한 방어전으로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악의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잘 모르면서 그것을 이리저리 퍼 나르고 퍼 옮기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결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세상살이를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것만 말하면서 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말의 운을 뗄 때 삼가고 또 삼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의혹 제기이고 특히 선거를 앞두고 있는 후보자에 대한 것이라면 말이다. 

각종 공약과 흑색선전의 홍수 속에서 시민을 위한 진정성 있는 공약(公約)과 당선만을 위한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空約)을 면밀히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획된 흑색선전에 말려들어 공범, 방조범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근거 없는 낭설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유권자의 현명함도 요구된다. 이와 관련 예전에 보았던 영화 속 주인공의 인상적인 대사가 생각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세요.” 

 

3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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