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우리는 여기서 언제까지 살까?” “모르지, 그런데 넌 그게 왜 궁금한데?” “누나는 안 궁금해?” “언젠간 우리도 이사 가겠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니까 넌 유치원 갈 준비나 해~!” 이사철답게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오르내리는 사다리차를 내려다보던 남매의 대화가 사뭇 진지합니다. 아이에게 속시원한 답을 줄 수 없던 저는 슬쩍 자리를 떴어요. 『우리 집은』의 ‘405호 엄마’라면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해줬을 텐데 말이에요.
『우리 집은』 한 가족이 트럭에 짐을 싣고 이사 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방이 두 개인 작은 복도식 아파트. 엄마랑 아빠랑 동생이랑 새로 이사 온 아이는 마냥 행복해 보여요. 예전 집엔 없던 식탁에서 다 같이 밥도 먹고, 여름엔 현관문만 열어놓으면 에어컨 없이도 엄청 시원한 거실에서 다 같이 잠도 자요. 예전 집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욕조 목욕은 또 어떻고요. 게다가 상추와 깻잎을 키우는 복도 텃밭과 아무리 빨리 뛰어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 빠른 엘리베이터에 동생과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학교까지! 아이에게 ‘우리 집’보다 좋은 집은 없습니다.
좋은 건 알려야 하는 법, 아이는 친구들에게 “우리 집 진짜 좋아! 우리 집에 놀러 올래?”라고 물어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너네 집 3단지잖아. 거긴 임대아파트야. 임대가 뭐가 좋아!” 아이는 잔뜩 굳은 얼굴로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임대에 사는 건 부끄러운 거야?”라고 묻죠. 언짢을 법도 한데 엄마는 아무 내색 없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부끄러운 거야”라고 답해요. 그러고는 두 아이를 꼭 안아줍니다.
퇴근길, 아빠가 사온 치킨 한 마리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되는 아이들이 집 때문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은 우리만의 행복이 깃든 ‘우리 집’이니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그걸 알고 있으니까요.
4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