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위기가 공부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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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위기가 공부의 기회다
  • 유성신 교무
  • 승인 2021.06.21 21:09
  • 호수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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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에서 온 편지3

 

교역에 임하면서 산과 지중한 인연이 이뤄졌다. 익산·영산·양산·울산의 가지산, 북인도 라다크의 히말라야 그리고 이곳 오덕훈련원 축령산에 이르기까지. 오덕훈련원은 축령산과 서리산의 8백미터 상봉을 사이에 두고 계곡물이 흐르는 곳이다. 계곡을 따라 산책로를 오르내리면 우주 천지자연의 경전을 읽게 된다. 가뭄이 들면 돌 틈 사이에 깊은 웅덩이에만 물이 고여 있다. 비가 자주 내린 뒤에는 계곡물이 불어나 산천을 뒤흔드는 소리를 내며 쏜살같은 위용으로 급하게 굽이쳐 흘러간다.

장마가 한참 지난 요즘에는 요란한 물소리가 잦아들고 바위와 돌 틈 사이에 물굽이를 따라 ‘돌돌돌’ 고요하게 흘러간다. 상황 따라서 시중에 맞게 물소리와 물 흐름이 제각각 다르다. 코로나로 훈련원에 드나드는 인적은 뜸하고 이곳에 상주하는 구성원들이 드넓은 도량 관리 수호에 여념이 없다. 훈련원의 끊어진 경제의 물꼬를 살펴보니 마치 가뭄에 유속이 멈춘 계곡과도 같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3천6백미터 고지 라다크에 다섯 해를 머무는 동안 인류의 4대 문명을 이룬 인더스강의 최상류의 물줄기를 보왔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거대한 인더스 문명을 이뤘다. 이곳은 1년 강수량이 80mm의 척박한 땅이다. 그러나 겨울철 고산에 내린 눈으로 내가 머무는 3천5백미터 주변에는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이용하여 밥하고 빨래하고 농사짓고 짐승을 기르며 넉넉한 인심과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이곳 라다크 사람들은 우리 한복과 같은 전통 복장을 입고 마니차를 돌리며 주어진 천혜의 자연환경에 순응하고 오로지 불심으로 행복한 생활 터전을 누리고 있다.

산에 대한 공경심과 경외심으로 살아가는 이 땅은 순수한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로 경제가 순환이 안 되고 오고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힘들다고들 한다. 그러나 어찌 보면 덕분에 시간도 넉넉하고 비대면으로 홀로 지내며 종교인에게는 수행하기 좋은 여건이 마련되었다. 물질과 돈이 넘쳐나면 추구하는 감각적 쾌락으로 인간의 순수성과 종교성이 상실하기가 쉽다.

우주 천지자연의 법칙 속에 운행하는 조건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거대한 스승이다. 가뭄이 든 척박한 환경에서는 물의 흐름도 멈추고, 천천히 바위돌을 쓰다듬으며 굽이굽이 돌아간다. 사람이 찾지 않는, 누군가의 공든 탑 속에 이루어진 이 거대한 도량을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어떤 분들의 호주머니에서 이 귀한 정재가 흘러 나와서 인류 훈련과 영성을 함양하는 이 터전이 이뤄졌을까? 지금껏 공든 탑으로 이뤄온 오덕훈련원의 공덕주 한 분 한 분의 합력의 원력을 소중하게 생각해 본다.

이곳은 청정한 보시를 나툰 분들이 이룬 만인의 집이다. 이 분들에게 참 공덕이 되는 길은 법을 닦는 공부인들이 문득문득 찾아들어야 할 것이다.

텅 빈 법당에서 스스로를 여한 없이 회광반조하고 기도하며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를 손수 수확하여 소반을 나누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황금의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어려운 위기일수록 공부인은 많은 사람과 많은 돈을 모으는 것보다 법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이 깊어 야 한다.

“도가의 명맥은 시설이나 재물에 있지 아니하고 법의 혜명을 받아 전하는 데 있나니라.”(〈대종경〉 요훈품 41장)

유성신
서울교구 오덕훈련원 원장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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