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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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손님
  • 조상덕 교도
  • 승인 2021.07.03 18:04
  • 호수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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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신 Y 대표는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 시원한 음료와 함께 주전부리를 준비해 주면 만족스러워한다. 화장품회사의 J 부대표는 평소 커피는 고사하고, 당이 든 음료나 주전부리 역시 먹는 법이 없기에 그녀의 몫으로는 특별히 예쁜 모양의 생수병을 놓아둔다. 미디어 회사의 J 본부장은 더운 날엔 아이스 아메리카노, 추운 날엔 따뜻한 밀크티를 고정으로 찾는다. 그가 오는 날은 두 메뉴가 사무실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미팅 준비를 시작한다.

손님에게 내놓는 모든 음료는 정갈한 도자기 찻잔에 담긴다. 주전부리도 먹기 좋게 끝을 개봉하여 내어놓고, 찻잔을 놓을 땐 평소 자주 사용하는 손으로 마실 수 있게 손잡이 방향을 돌려놓는다.

상대방에 대한 이와 같은 배려는 그 중심에 ‘신앙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 신앙은 ‘일원상의 신앙’이고, 나에게는 회사를 방문한 손님들이 모두 일원상이다. 신앙의 대상이 오셨으니 대충, 함부로 대접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잔을 정갈히 받치고 주전부리를 곱게 정렬하여 담는 일은 누군가를 위한 대접이라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신앙의 표현에 가깝다. 신앙하는 만큼 드러난다고 생각하니 정성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 원불교인에게는 주변 모든 이가 신앙의 대상이다. 그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려 깊게 대우하는 것은 스스로 신앙을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더 나아가 나와 같이 지극히 평범한 교도도 거뜬히 할 수 있는 교화의 방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화라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마음의 감화가 일어나면 누구든 상대의 말을 들으려 몸을 기울이는 것이 본성이라, 우린 그저 상대의 마음에 감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원한 고구마차와 커피콩빵을 준비해야겠다. 오늘의 일원상은 이 두 가지를 참 좋아하는 분이다.

7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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