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의 향기] 달리는 법당에서 매일 부처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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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달리는 법당에서 매일 부처 만나다
  • 박혜현 객원기자
  • 승인 2021.07.04 23:36
  • 호수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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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교당 고길천 교도

 

“핸들을 돌리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나, 기어를 변경할 때도 생각 없이 하지 않고 하나하나 삼학에 대조하여 운전합니다. 그래야 승객을 편히 모실 수 있으니까요.”

가락교당 고길천 교도는 자신의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한 명 한 명이 만족할 때까지 대종사의 법을 반가이 받들어 응용하고 대조하기를 반복한다.

그가 운전을 시작한 초반에는 술 취한 승객들이 시비를 걸고 문을 발로 차며 위협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승객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편리한 대로 운전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동료에게서 ‘버스회사 사장이 우리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니다.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월급을 주는 것이니 어찌 소중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승객을 대하는 마음을 바꾸게 됐다.

 

운전과 삼학

고 교도는 어떻게 하면 승객들을 편안히 모실까 고민하고 연마하여 ‘운행 중 세 가지 원칙’을 세우게 됐다고 한다.

“첫째는 멈춤(stop)이에요. 차가 붐비는 때와 한가한 때 멈추는 것이 달라요. 차들의 흐름을 읽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급하게 멈추지 않아요.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잘 쉬어야 여유를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는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삼학의 정신수양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생각(think)이다. 승객들의 밀집도와 연령대를 생각하며 핸들을 돌려야 한다. 그는 자동차의 핸들 조작을 사리연구에 빗대 설명했다. 셋째는 선택(choice)이다. 운전은 승객들의 생명과 관련이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응용할 때에 정의는 용맹 있게 취하고 불의는 용맹 있게 버리라고 했잖아요. 그것처럼 자동차의 기어는 삼학의 작업취사와 같아요.”

그에게 삼학공부는 그렇게 실생활 속에서 함께 이뤄진다. 원불교를 만나 정법을 알았으니 ‘이왕이면 최고의 버스기사’가 되는 게 꿈이라는 그는 삼학 뒤에 열심히(hard)를 붙여서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닌 공부에 매진 중이다.

 

 

버스는 법당, 승객은 부처

‘법당에 모셔져 있는 법신불이나 불상만을 부처로 알지 말고, 모든 것이 부처인 것을 알아서 모든 일에 불공해야 한다’는 대산종사의 말씀을 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는 그는 늘 최선을 다해 운전하다 보니 어느 순간 승객이 부처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할머니 한 분이 큰 짐가방을 들고 힘겹게 버스에 올라오시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서 운전을 멈추고 할머니 짐을 들어 자리까지 갖다 드렸어요. 그런 다음에 다시 운전했죠. 이를 본 승객들이 오히려 흐뭇해하더군요. 제가 승객들을 존중해드리니 그분들도 저를 존중해 주었어요. 저에게 버스는 달리는 법당이고, 승객들은 살아있는 부처예요”라며 동포 보은으로 맛본 기쁨을 내보였다.

그가 운전하는 ‘성남 315번’ 버스 노선에는 학교가 3개 있고 판교 테크노밸리가 있어서 학생과 직장인 승객이 많다. 아무리 운행 시간에 쫓겨도 그는 승객들이 타면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때만큼은 처처부모, 처처자식, 처처동포로 승객들과 그가 하나가 된다.

그는 버스의 쾌적한 환경유지와 함께 양보 운전을 하며, 짐을 들고 타는 승객들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출발하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고 교도가 자신의 일에 철저한 프로가 된 데에는 그의 어머니(상타원 주명종 교도·대치압구정교당)의 영향이 크다. 그가 버스운전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내가 탔다고 생각하고 버스에 타는 손님들을 잘 모셔라. 동포은에 보은하는 기회로 삼아라” 하고 당부했다.
 

 

이루고 싶은 서원

고 교도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특수한 근무상황에 처해 있어 교당에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교당에 큰 도움도 드리지 못하고 법회도 자주 나가지 못하는 실정이라 교무님, 교도님들에게 미안하죠. 그래도 실지불공으로 자리이타를 실천하는 원불교인이란 생각은 잊어본 적이 없어요.”

그에게는 꿈이 있다. 교도로서 평소 다 하지 못한 보은봉공을 정년 후 공도사업으로 만회해 볼 생각이다. 지금은 삼대력으로 얻은 밝은 눈으로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모두가 만족할 때까지 노력을 쉬지 않을 것이다. 달리는 법당 안에서 그가 매일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까닭이다.

7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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