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조요경] 태풍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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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요경] 태풍의 눈
  • 박성호 교무
  • 승인 2021.08.08 09:13
  • 호수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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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요경 다시읽기8
박세웅(성호) HK교수-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박세웅(성호)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교수

여름철 태풍 소식이 하나둘 들려온다. 모든 것을 한순간 날려버리는 태풍도 그 한 가운데는 고요한 태풍의 눈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중학교 어느 수업시간이었다. 당시 수업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에 내가 태풍의 위험에 휘말리게 되면 밖으로 도망가지 말고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태풍의 눈에 있으면 안전하겠구나!’ 그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마냥 혼자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마음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시비의 태풍이 휘몰아치는 요즘, 어쩌면 그래야만 살 수 있다.

『금강경』 7장에서 부처가 수보리에게 여래가 과연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얻었고 그 법을 말씀한 바가 있는가를 묻자 수보리는 그 본의를 짐작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제가 부처께서 말씀하신 뜻으로 생각해본다면 ‘무유정법(無有定法)’을 이름하여 무상대도라고 하며 여래께서 말씀한바 또한 무유정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유정법이란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법이란 뜻이다. ‘무상대도란 이것’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무상대도와는 한없이 멀어지며, 무엇으로 규정되는 순간 그와는 다른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A라는 사람이 a라는 주장을 내세우면 반드시 B라는 사람이 나와서 b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결국은 a가 옳다 b가 옳다 서로 싸운다. 개인 간의 싸움이 점차 집단 간의 싸움이 되고 집단 간의 싸움이 국가 간의 싸움이 되고 나아가 무의미한 사상전(思想戰)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이처럼 무상대도는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리(不與萬法爲侶者)이다. 이에 부처는 자신이 설한 법을 ‘떼배(나무나 대[竹] 따위를 뗏목처럼 엮은 원시적인 배)’에 비유하며 경계를 따라 그에 맞는 법을 행할 뿐이지 무엇인가에 집착하여 고집하지 않아야 함을 당부하였다. 한겨울 눈이 가득 뒤덮인 어느 날에 대종사도 제자들에게 현묘한 자리를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 친히 마당에 나가 눈을 친 것은, 제자들이 그 말에 붙잡혀 사량계교로 시비할 것을 염려하여 무유정법의 자리에서 그 상황에 가장 적중한 행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대종경〉 성리품 13장)

좌산상사는 이처럼 무유정법의 인격을 갖추는 사람은 좌우에서 볼 때 그 폭을 잡을 수 없다고 말씀한다. 이렇게 보면 이런 것 같고, 저렇게 보면 저런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성질이 급한 것도 같고, 어떻게 보면 성질이 느린 것도 같으니 경계를 따라서 때로는 느린 성격을 써버리고, 때로는 급한 성격을 써버리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피곤하면 잠자는 것이 곧 불교라고 하는 말씀과도 같다.

무유정법이 아무리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법이라고 할 수도 없고, 법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지만 모든 현성(賢聖)이 이 자리에 바탕하여 일체의 차별법을 쓰기 때문에 결코 허망한 세계가 아니다. 이에 대해 좌산상사는 성인이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서 인간의 시비이해를 건설하는 것과 같다고 해석하며, 이 자리에 관계되지 않고 바탕 하지 않는다면 그 법이라고 하는 것은 조각이지 근원 있는 법은 아니라고 말씀한다.

온갖 차별상이 난무하는 시비의 태풍에서 우리가 모두 온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단 밖의 시비를 잠시 멈추고 각자가 안으로 태풍의 눈에 머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정해진바 없는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 그 상황에 맞는 중도의 길을 찾아 서로가 원만하고 은혜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시비는 오히려 공부가 되고 위기는 도리어 기회가 될 것이다.

“차별이 있는 세계에서 차별 없는 자리로 들어가는 것을 좌(坐)라 하고, 차별 없는 자리에서 차별 있는 세계를 밝게 보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휴휴암좌선문>

8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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