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의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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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의 수행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1.10.16 09:09
  • 호수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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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지름길 법문2
라도현 교도<br>화정교당<br>
라도현
화정교당 교도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양성하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사용하자는 것이 곧 일원상의 수행이니라.」

교도로서 우리는 이 ‘일원상의 수행’ 법문을 모르고서는 진리적인 수행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원상은 곧 진리 당체를 뜻하기 때문에, ‘일원상의 수행’이라는 것은 바로 ‘진리 수행’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이고 또 실다운 이 진리 수행을 제쳐두고 다른 수행에 관해 설명한다는 것은, 마치 달걀에서 노른자를 빼고 흰자만을 가지고 달걀을 설명해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일원은 진리이며, 나의 자성입니다. 그래서 일원상의 수행은 ‘나의 자성 수행’입니다. 이 말은, 천만 가지 대상을 두고 이런저런 수행을 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의 당체, 우리의 자성 하나만을 두고 공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위 법문은 첫째, 자기가 자기 마음을 알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이란 게 어떤 것이냐. ‘원만구족 지공무사’ 하다는 것입니다. 일원상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아니, 바로 ‘일원상’이라는 것입니다. 일원상과 절대로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를 모르겠고 믿어지지도 않는다면 지금까지 방편(方便)설교만 들어왔고, 진리설법은 듣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방편설교라는 것은, 늘 변화하고 있고 바로 지금도 변하고 있는, 천만사물에 관해서 설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모든 사물의 뿌리인 진리, 일원상, 우리의 자성에 관해서 설하는 것을 진리설법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 당체가 일원상이고 원래부터 원만구족 지공무사한 것임을 알려면, 교리적 지식이 아닌 본성의 지혜를 밝히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 공부법으로는, 마음이 고요하고 투명하게 깨어 있음으로써 사물과 나의 근본자리를 비춰보는 공부[默照禪]와, 화두에 깊은 의문을 품고 지내다가 마침내 자신의 본래면목을 깨치는 공부[看話禪], 내 마음이 경계와 접하는 것을 계속 주시함으로써 마침내 만법과 나의 참 모습을 깨치는 공부[觀法] 등이 있습니다. 법문으로서는 내 마음의 본체를 단도직입으로 바로 가리키는 조사의 심지 법문이 있는데, 이렇게 하여 나의 참 모습, 내 자성을 깨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나의 자성이 ‘망상과 분별 주착’에 물들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 두 번째 공부입니다. 세 번째 공부는, 나의 자성에서 저절로 나투는 지혜(원만구족 지공무사)를 삶에서 그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수행은 내 마음이 본디 ‘일원상’임을 깨쳐서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면 그다음 공부는 자연히 알아서 할 수 있게 됩니다.

진리적 수행, 일원상의 수행은 이밖에 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이 공부가 진실한 공부이며, 이것 외에는 모두가 상(相)이 있는 공부, 착(着)이 있는 공부입니다.

10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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