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좌담] 시대 읽는 유연한 원불교, MZ세대 공감하는 원불교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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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좌담] 시대 읽는 유연한 원불교, MZ세대 공감하는 원불교 ‘희망’
  • 강법진 편집장
  • 승인 2021.11.16 17:03
  • 호수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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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좌담_3040세대가 바라보는 코로나 시대의 원불교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인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대명제를 던졌다.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살아가는 초연결사회에서 종교는 인류에게 어떤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원불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울안신문은 30~40대 재가출가 교도로 이뤄진 교정원 문화사회부 소속 대사회교리연구모임과 공동기획하여 MZ세대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패널들이 느끼는 원불교는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좌담은 11월 4일 라이브교당 줌 화상과 지면으로 이뤄졌고, 사회는 본사 강법진 편집장, 기획은 문화사회부 조경원 교무와 공동 주관했다. 패널에는 조경원·박대성(명상·심리학)·강현욱(NGO)·권덕규(산림생태학) 교무, 남성은(교육)·채일연(동물복지)·허성근(정치학)·박성준(보건행정학) 교도가 참여했다.

패널에 참여한 박성준, 박대성, 채일연.
패널에 참여한 강현욱, 권덕규 교무.
패널로 참여한 허성규, 조경원<br>
패널로 참여한 허성규, 조경원

 

 코로나 팬데믹이 바꾼 우리 사회를 교리적 관점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

성은_ 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을 지켜보며 일상 속에서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이 ‘인과’였다. ‘우리가 만들어낸 환경과 생태계 파괴가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돌아왔구나’ 하는 것을 매일같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인과’를 종교적으로 믿지 않는 지인들에게도 ‘(환경을 파괴한 결과가) 이렇게 빨리 돌아온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결국 과보를 함께 받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현욱_ 자연발생적인 현상을 교리로 억지로 끼어 맞출 것은 없다.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가 말씀한 미래 모습과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결부시켜 바라봐야 한다. 대종사는 먼저 깨친 사람이 주인이 되는 ‘용화회상’을 말씀했고, 정산종사는 음 세계는 문을 닫고 있는 시대라면 양 시대는 문호를 열고 서로 만나는 시대라고 했기 때문에, 코로나 시대에는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대성_ 인류역사상 괴질이 안 돈 적이 없다. 코로나는 상대적으로 치사율이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는 대종사는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을 밝히며 자리주의를 벗어나 이타주의로 가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역시 인간의 이기심이 불러온 질병이다. 민생을 위해 위드 코로나로 접어들긴 했지만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만 잘 실행해도 지금과 같은 바이러스는 극복할 수 있다.


덕규_ 인간은 편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을 배려하지 않고 우리의 편리함만 좇아 살아왔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에게도 도움이 되는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살아야겠다.


경원_ 천지의 길흉 없는 도를 체감하는 것 같다. 현상의 길흉에 끌리는 중생이지만 흉한 일을 당할 때 길할 일을 발견하는 게 원불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무오년 감기 때에도 소태산 대종사는 방언공사로 공동체의 삶과 공익의 길을 열어줬다.


성근_ 대규모·직선·성장의 20세기에서 소규모·순환·생태의 21세기로 전환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계기였다. 성장지상주의적인 인류 문명에 대한 성찰로 생태주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이치를 담고 있는 일원주의,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인 사은보은, ‘삼동윤리’ 정신이 지향하는 세계주의가 곧 생태주의라고 본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의 생활방식과 태도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삶의 개벽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과제가 됐다. 

-  채일연(동물복지) -

일연_ 안타깝게도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다. 감염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도 있겠지만 경제적 고통, 관계의 단절로 인한 심리적 고통도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인류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에 대해 진단하는 계기도 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었던 천지 배은, 동포 배은의 결과를 경험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감염병을 막아낸다 하더라도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의 생활방식과 태도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정신개벽, 우리 삶의 개벽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과제가 됐다.

성준_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보건의료분야에선 백신의 예방접종과 관련된 동포은이 논의되고 있다. 이전까지는 남녀·노소·빈부 등 다양한 차이가 있고 구별이 있었지만, 코로나는 차별을 두지 않고 모두가 백신을 접종하도록 했다. 아직까지는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 개인적 지원은 부족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단의식도 작동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초연결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각자는 초연결사회에서의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

대성_ 학생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2년 가까이 격리 수용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외출·외박 후에는 반드시 코로나 검사를 받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나 하나의 행동이 조직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해야 하니까 모든 구성원들이 상당히 예민한 상태다. 초연결사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나 하나의 행동도 자행자지할 수 없는 시기이다. 위드 코로나로 숨통이 트일 것 같긴 한데, 내년 초까지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


경원_ 대외업무를 주로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활동의 제약이다. 업무 성격상 대면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그게 어렵다 보니 화상회의나 SNS 등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면 위주의 회의 문화와 수직적인 의사 결정 구조가 아직 주를 이루다 보니 인터넷·미디어 환경이 제약된 곳에서는 소통 단절이 심해졌다.


성준_ 보건의료분야에서 종사하는 의료진과 업계종사자들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코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반복적인 연결로 인해 백신을 접종하였더라도 코로나에 걸리는 돌파 감염의 위험이 있다. 의료진들과 업계종사자들은 개인의 삶에서 최대한 만남을 줄일 것을 권고받아 오히려 개인적 연결은 감소했다.


성은_ 교사로서 경험한 바로는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 물리적 모임을 제한하여 초반에는 구성원 간 연결이 해체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옮겨오면서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컴퓨터 화면 속에서 만나지만 연결의 밀도는 높아졌다. 이전에는 교실이란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학생들의 부진이나 문제행동을 잡아 주는 게 고민이었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시간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교사나 보호자가 관리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주체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할지가 큰 화두가 됐다. 학생들이 작은 방에 홀로 앉아 고립되지 않도록 기상 시간, 컴퓨터를 접속하는 시간, 쉬는 시간 등 의도치 않게 학생들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됐다. 자기 주도성이 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초연결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더 고립되고 낙오되기 쉬운 환경에 우리 아이들이 놓여있음을 느낀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실력도 갖춰야 하지만 대변·비대면에도

막힘 없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유연하다는 것은 준비가 되어 있고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 권덕규(산림생태학) -


현욱_ 초연결사회를 만드는 기반은 발전된 기술문명에 인간이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명의 위기에 자신의 연결(인간관계·일·여가 등)을 또 다른 도구에 의존해 살면 우리는 얼마든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 사례가 최근 일어난 KT망 사고다. 반대로 긍정적 측면에서 보면 명상의 효과가 오히려 온라인에서 더 높게 나왔다는 해외교당 사례를 보면서, 기술문명에 너무 몰입해서도 안 되지만 적절히 선용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클랜드 교당 원선일 원무의 명상에 관한 연구사례를 보면 온라인으로 만나다가 한 번씩 오프라인으로 만났을 때 더 높은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기술에 의존한 초연결은 결국 오프라인의 연결로써 실체화된다고 본다.


덕규_ 우리 사회가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실력도 갖춰야 하지만 대면·비대면에도 막힘 없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유연하다는 것은 준비가 되어 있고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원불교도 그랬으면 한다.


일연_ 4차산업혁명의 키워드 중 하나가 초연결이다. 말 그대로 공동운명체라는 뜻이다. 어느 한 지역의 문제를 방치·방관하면서 우리만 잘 살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또 명심할 것은 공동운명체 안에 우리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동물들 역시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존재이다. 진화생물학자인 롭 월러스는 공장식 축산에 대해 적게는 수천 마리, 많게는 수십만 마리의 같은 종의 동물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어 병균들이 같은 시기 같은 종의 숙주들을 떠돌아 사육장이 변종들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며 ‘제2, 제3의 코로나19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동물과 사람의 건강, 그리고 복지가 직결된다는 원 헬스(One Health), 원 웰페어(One Welfare)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동물 역시 인간과 같이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도덕적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동물권을 옹호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비건(Vegan)을 선택한 이들도 이와 같은 이유다. 올해 2월 군대에서도 채식을 선택할 수 있게 했고, 3월에는 서울시에서 ‘채식환경 조성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성근_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머나먼 태평양 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0년 대한민국 장마는 최고 신기록을 세웠다. 국내 농가들의 타격도 컸다. 최근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요소수 사태를 보라. 대부분 국민들이 잘 모르던 요소수, 대부분 특정 국가 수입에 의존하던 요소수라는 물품 하나가 공급이 안 되니 국내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기후위기와 요소수 대란을 보면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우리나라만 잘 해서 되는 문제들이 아니다. 점점 인류 공동의 문제에 대한 협력을 요청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변화의 선상에는 나는 원불교 교법·동지·스승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경원_ 출가자에게 교법·동지·스승의 영향력은 크다. 다만 그 영향력이 선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 교법은 언제나 여여하지만, 그 교법을 수호하고 실현하는 방법이 여러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이합집산하는 모습을 경험하면서 종교가의 동지애와 스승관을 새삼 살피게 됐다. ‘도가의 명맥은 시설이나 재물에 있지 않고, 법의 혜명을 받아 전하는 데에 있다’라는 법문으로 현재의 심경을 대신한다.


성준_ 코로나 시기에 원불교가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작동시킨 것은 없다. 원불교의 교리와 일반사회에서 통용되는 원리가 비슷하게 작용한다. 그것은 원불교의 교리는 좋으나, 실천력과 시대 해석력이 약하고 할 수 있다.


대성_ 이번 수위단원 선거 부정을 보면서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이 정도였나 하는 깊은 회의가 들었다. 특히 출가교역자 게시판에 올라온 선후배 간 글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힘든 시간이었다. 신심은 다시 챙겨가고 있지만 교단 개혁이나 종교의 미래에 대한 판단은 보류 중이다.

 

전보다 법동지나 스승과의 교류는

현저히 줄었기 때문에 마음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교법에 대한 믿음이

나의 생활 속 취사를 제어하는

마지막 한계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 남성은(여) -


현욱_ 이번 새 전서 폐기 사태가 교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지와 스승의 영향력으로 작동한 인정교화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새 전서 사태와 같은 문제는 동지 간 위로하고 사태를 무마시키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면 조직의 방향성에 혼란이 온다. 우리가 바라는 방향은 소태산 대종사가 제시해 준 방향이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다. 우리는 과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가.


덕규_ 전서 사태를 겪으며 내가 생각했던 교단, 스승, 동지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중심이 바로 서 있지 않으면 금방 흔들리겠구나,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바른 것인가 하는 스스로의 질문을 하게 됐다.

 

성은_ 전보다 법동지나 스승과의 교류는 현저히 줄었기 때문에 마음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교법에 대한 믿음이 나의 생활 속 취사를 제어하는 마지막 한계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연_ 동물운동을 하며 느끼는 점은 대종사의 법이 시대를 앞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전〉 계문에 ‘연고 없이 살생을 말며’, ‘연고 없이 사육을 먹지 말며’라고 법으로 정하여 다른 생명을 죽이고 취하는 것을 경계했다. 한 걸음 나아가 인권의 개념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때, 인간을 넘어 다른 생명까지도 동포이니 그 은혜를 알고 보은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다른 생명과의 공존이 화두인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가르침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교단에서는 함께 사는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육식만 하더라도 교단에서 고기 공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육식을 금하지 않더라도 채식을 선택한 이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꼭 육식을 해야 한다면 동물복지축산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필요성도 못 느끼는 것 같다. 또 만약 교당 법회에 반려동물을 동반한다면 어떨까. 교당의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동물을 동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거부반응을 일으키거나 핀잔을 듣기 쉬울 거라고 예상한다. 원불교가 시대를 선도했던 종교에서 이제는 시대를 뒤따르지도 못하는 종교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성근_ 여러 가지 위기를 겪으면서 원불교 교법이 지향하는 방향에 대한 확신은 커졌다. 다만 실제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내가 겪는 고민을 교도들과 잘 나누지는 못했다. 원불교에서 정치 영역을 고민하고 활동하는 교도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좋겠다.

 

MZ세대들이 종교를 멀리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덕규_ MZ세대들을 가까이서 보고 사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입장을 미뤄 생각해 보면 ‘먹고살기 힘든데 종교가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것이다. 종교는 MZ세대들이 원하는 스펙을 당장 쌓아줄 수 없기에 그들이 겪는 마음의 불안을 해소하고 위안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이 부족한 것 같다.


성준_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 하고 자란 MZ세대들이 삶의 일부를 규제하려는 종교를 믿으려고 할까. 차라리 종교가 어려운 사회환경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면 믿겠다.


경원_ MZ세대의 특징에 그 답이 있다고 본다. MZ세대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즐기는 세대이다. 그만큼 다양한 정보를 개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세대이다. 반면 종교는 어떤가? 조직과 제도, 건물, 운영방식 등에 있어서 수십 년간 고착된 곳이다. 결국 종교는 ‘올드(old)’하다고 느낄 것이다. 오래전부터 문제의식을 하고 변화한 종교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종교는 MZ세대들이 외면할 것이다.
 

결혼문제, 취업문제, 성평등과 같은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에 있어서

기성종교는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

원불교는 대(大)와 체(體)는 좋은데

소(小)와 용(用)이 약하다.

교법이 지닌 위대함을

사회적으로 풀어내는 점이 아쉽다. 

- 허성근(정치학)-


성은_ 감각적이고 다채로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에게 보수적인 공간이나 환경에서 오는 괴리감이 클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이 가진 고민을 종교가 해갈해 주고 있지 못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좋은 교리는 있지만, 현세대의 눈높이에 맞는 전달이나 접근방식에 대한 결과물은 부족해 보인다. MZ세대라서 종교와 멀어진 것이 아니라, 종교의 더딘 변화에 대한 갈증이나 실망이 세대를 거치면서 누적됐다고 본다.
 

성근_ 요즘 젊은 세대들이 실존적으로 고민하는 문제에 기성 종교들이 해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혼문제, 취업문제, 성평등과 같은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에 있어서 기성 종교는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 특히 낙태죄 폐지나 성평등 관련 쟁점에서 일부 기성 종교인들은 문제의 핵심을 전혀 못 짚고 있다. 모르면 배워야 하는데, 본인들의 종교적 아집에 갇혀 있다. 원불교는 대(大)와 체(體)는 좋은데 소(小)와 용(用)이 약하다. 교법이 지닌 위대함을 사회적으로 풀어내는 점이 아쉽다.
 

현욱_ MZ세대들이 종교를 찾지 않는 것은 삶의 효용성이 없어서이다. MZ세대는 인지가 열리고 인과에도 밝은 청년들이 많다. 그들은 ‘내가 왜 힘든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교무들보다 더 고민하고 답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그럴 때 원불교가 마음의 위안 말고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삶의 방향성,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으면 MZ세대들은 점점 종교를 멀리할 것이다.
 

우리의 체제가 공화제도를 지향하고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공화제도를 실현하려고 했다면

좀 더 대중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고, 대중의 의견을 모아서

교당을 운영했어야 했다. 

- 강현욱(NGO) -

원불교가 우선 개혁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현욱_ 〈교헌〉 전문에 ‘일원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공화제도 체제와 십일일단의 교화로 참 문명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과연 원불교가 세 가지 방향성으로 균형있게 잘 유지해 왔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체제가 공화제도를 지향하고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분명 공화제도라고 했는데 십인일단 체제로 운영해왔다. 공화제도에서 조직운영 및 결의는 스승 한 사람이 아닌 대중의 공의가 모아지고 존중되는 구조를 지향한다. 그러나 십인일단 체제로 잘 못 맞추다 보니, 단장과 중앙, 단원 또는 스승과 제자라는 수직적 구조가 원불교라는 조직을 운영 및 결정해 왔다. 이는 전제군주제와 다를 바가 없다. 공화제도를 실현하려고 했다면 좀 더 대중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고, 대중의 의견을 모아서 교당을 운영하는 방법을 100년 동안 해왔어야 했다. 이것을 하려면 굉장히 불편하다. 권력을 분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개혁해야 한다면 우리가 외면해 왔던 공화제의 본의를 살리고 체제로서 공화제를 실현할 수 있게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대성_ 원불교가 국내 4대 종단이란 허울에 취해있다고 본다. 다행인 것은 21세기에는 ‘마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실천방법에 있어 ‘명상’이 대세가 되는데 원불교가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단은 1인 교무가 직접적인 교화를 할 수 있는 적정수가 50명이다. 그 정도의 인원을 모아서 교화할 수 있는 방법이 마음공부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턱없이 부족하다. 예비교무 교육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교화현장에 나가서 힘들어진다. 우리 삶이 행복하지 않는데 교도들에게 행복하라고 가르칠 수 있는가? 일원상의 진리를 증득하고 실천했다는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21세기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물으면 결국 ‘마음공부’다.


덕규_ 교단 내 교육과 원불교학의 발전을 위해 수많은 전문가를 길러냈다. 각 전공분야에서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배운 것이 개인의 만족에 그치거나 사장되지 않고 교단 곳곳에서 잘 활용됐으면 한다.


대성_ 우리 교단 각 부분에 전문가들이 상당한데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않는다. 교육기관 교무들은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이번 전서 사태에만 보더라도 교학전공자들을 얼마나 활용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원불교학, 철학, 국문학, 어문학 등등 어렵게 양성한 전문가들을 적절하게 활용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본다.
 

교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라는

원불교의 장점을 살리면 좋겠다.

4대 종교라는 위상 때문에

교단 규모는 작은데 과한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을 놓치게 된다. 

- 조경원 교무(문화사회부) -


경원_ 교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라는 원불교의 장점을 살리면 좋겠다. 겉멋 들지 말고 원불교가 걸음마 수준의 종교라는 것을 자각하고 4대 종단이라는 위상 때문에 기성종교가 하는 것을 다 따라 하지 않았으면 한다. 교단 규모는 작은데 과한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개혁이나 변화도 중요하지만, 진단이 우선이다. 이번에 교단 (개혁)특위가 출범하면 제대로 된 진단부터 하고 개혁할 부분은 같이 개혁해 가면 좋겠다. 그리고 반드시 결과물을 내야 한다. 옥상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준_ 병원에는 어디나 불교나 천주교나 기독교 등 일부 종단이 운영하는 공간(기도실 등)이 있다. 원불교도 교세확장보다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더 치료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면 어찌 사람이 몰려오지 않겠는가?


성은_ 교육계도 종교계와 닮은 부분이 많다. 신성한 장소, 바이블, 그리고 전통을 고수해온 방식들까지. 이것들을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사회변화의 큰 물결을 맞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정비해야 한다. 교육계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스마트러닝(혹은 e-러닝)이 성장해 왔지만, 학생들에게 활용해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며 마치 주객이 전도되는 듯한 스마트러닝 중심시대를 맞이했다. 몇 주를 컴퓨터와 장비들을 붙잡고 익힌 결과, 이제 겨우 학생들과 만나는 데까지 도달했다. 이제는 가장 중요한 교육 ‘콘텐츠’의 내실강화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닫힌 교실에서 나만 알던 내 수업이 쌍방향 툴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고, 비로소 내 수업을 3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다듬고 바꿔가고 있다. 종교계의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당연했던 것이 코로나 이후로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됐다. 누구도 ‘이 시기만 넘기면…’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교단 시스템과 교화방법에 대해 다각도로 진단하고 재정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병원에는 타종단이 운영하는 

공간(기도실 등)이 있다. 

원불교도 교세 확장보다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면

사람이 몰려오지 않겠는가?

- 박성준(보건행정학) -

성근_ 원불교 교법이 시대정신에 뒤처지지 않았으면 한다. 선도하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최소한 발걸음은 맞춰야 한다. 제일 안 좋은 모습은 사회적 압력에 의해 원불교가 바뀌는 것이다. 앞으로 교단이 고민해야 할 세 가지 의제를 우선 꼽고 싶다. 성평등, 노동, 평화다. 교화는 노동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이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교단 내부 노동 개선 제도의 문제를 모두 신심 여부로 끌고 가는 것은 쟁점을 잘못 짚었다. 모든 교도가 여래위의 심법이 당장 될 수 없다면, 제도는 보통의 사람들 수준, 사회적 수준을 고려해서 맞춰야 한다. 평화를 이야기할 때 지나친 민족주의나 통일지상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평화와 통일은 같은 선상의 용어가 아니다. 남북통일보다 보편적인 동아시아 평화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통일 이전에 한반도 평화 체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추가로 한국 정치에 대한 관점을 말하고 싶다. 〈대종경〉 교의품 36장을 보면 도덕과 정치가 근본은 같지만 ‘정치는 법률에 근원하여 일의 결과를 보아서 상과 벌을 베푸는 법’이라 했다. 정치는 도덕과 원리와 다르다. 선한 의도로 정치를 해도 결과가 악하면 벌을 받는 것이 정치다. 건강한 갈등과 경쟁은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해로워 보이는 것이 나중에 은혜가 되는 이치인 ‘은생어해(恩生於害)’가 정치의 특성이다. 정치인들 보고 싸우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단 내에도 다양하고 혁신적인 목소리들이 드러날수록 당장은 불편할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은혜다. 건강한 갈등과 경쟁이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들어야지, 정치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교법에 맞지 않다.

 

『세계미래보고서 2022』에서 2022년은 메타 사피엔스가 온다고 말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했다. 100세 시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성근_ 원불교 교법을 실천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원불교를 닮은 녹색당 정치인으로 성과를 만들고 싶다. 정치의 영역에서 세상에 보은하고 싶다.
 

대성_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어느 순간 ‘정신개벽, 성불제중’이라는 당연하지만 거대한 담론에 갇혀 살게 됐다. 그러다 보니 교도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건네지 못했다. 이 행복이 무르익어야 성불과 제중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우선 나 자신의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찾아야겠다.
 

성준_ 기술력이든 뭐든 우선 우리는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온전한 나 자신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원불교도 변화하는 세태에 맞춰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집착하여 근본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은_ 물질과 기술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시대라면, 이것들을 ‘활용하는 주체’로서 살아가고 싶다. 단순한 온라인을 넘어 메타버스의 세상까지 넘나들며 국한 없는 교류에 몸을 싣되 두 발은 현실 세계에 굳건하게 디딘 사람이기를 꿈꾼다. 이를 위해 온전한 정신의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우리가 어느 순간 

‘정신개벽, 성불제중’이라는

당연하지만 거대한 담론에

갇혀 살게 됐다. 그러다 보니 교도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건네지 못했다. 

작지만 행복한 행복을 찾아야겠다. 

- 박대성(심리, 상담)

현욱_ 소태산 대종사는 사회에 그렇게 무책임하지 않았다. 사은의 보은 조목을 두리뭉실하게 만물을 부처로 모신다고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동포 보은의 자리이타는 자본가와 노동자, 소비자 사이의 자리이타를 의미하고 있지만, 교단에서 이를 해석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사은의 보은 조목은 나의 마음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 실천 조항이다. 그것이 실현되는 모습이 공화제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공화제가 안착하게 하고 공화제를 방해하는 요소는 타파해 가야 한다. 그런 원불교가 됐으면 좋겠고 그런 역할을 하는 한 사람이고 싶다.


덕규_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나를 비롯한 주위도 변하고 은혜가 충만해지는 것 같다. 나의 행복은 어디 있을까 고민하며 살아가게 된다. 나아가 교단에 있는 교무 개개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교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연_ 지금의 추세라면 우리 삶의 많은 영역이 메타버스라는 초월공간으로 이전 혹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그 비중이 높아질수록 육신이 머물고 있는 현실의 ‘나’와 메타버스 상의 ‘나’ 중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또 현실적 윤리규범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의 삶은 어떠할지 상상이 안 된다. (비록 가상공간이라 할지라도) 육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지은 죄악이 없는 것일까. 이런 생활이 지속된다면 우리의 정신은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자신의 정신을 지키는 일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경원_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원불교, 즉 개교의 동기를 실현하는 원불교를 꿈꾼다. 실용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MZ세대가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를 이끄는 시대가 왔다. 100세라는 나이보다 건강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제 100년을 넘긴 교단도 건강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정리=강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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