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는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니 검사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택에서 대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흐레 동안의 칩거 생활을 마친 지 이틀 만에 다시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첫째의 자가격리로 브레이크 걸린 가족의 일상이 막 회복되려던 찰나, 이번엔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가 호명되었습니다.
쉴 새 없이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만 있었던 지난 9일이 빠르게 뇌리를 스칩니다. ‘으악!… 이걸 한 번 더 하라고?’ 그야말로 버티는 하루하루였기에, 두 번째 격리 통보에는 차라리 시간이 멈추길 바랐죠. 하지만 이미 우리에겐 ‘아홉 개의 오늘’이 배정되었고, 이번만큼은 허무하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 첫 단추로 『오늘 상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시리도록 푸른 새벽, ‘오늘 상회’에 불이 켜졌어요. 바쁜 회사원과 학생, 손톱 밑이 새까만 노인,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할머니가 차례로 찾아옵니다. 매일 이곳에 들러 자신의 병에 담긴 ‘오늘’을 마셔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할머니는 오늘 상회의 오랜 단골입니다. 어렸을 때는 오늘을 더 달라고 떼쓰던 꼬마였고, 소녀가 된 후로는 종종 오늘을 허투루 보내기도 했어요. 어른이 되고 나서는 달콤한 행복도 맛봤지만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도 큽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오늘이 지나가는 사이, 할머니와 늘 함께하던 사람의 ‘오늘’이 사라집니다. 오늘 상회로 향하던 할머니의 발걸음이 처음으로 멈춘 것도 바로 그때. 삶에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어 보이는 할머니의 표정에 덜컥 겁이 납니다.
벤치에 붙박인 할머니에게 지금 필요한 건 위로라는 걸 아이들도 알아봅니다. “할머니 일어나세요! 기분이 안 좋아도 오늘을 드세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을 리 만무하지만 할머니는 긴 생각을 마친 후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 것으로 책장 너머의 아이들에게 위로를 되돌려줍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오늘을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실하게 살아낼 용기를 얻은 우리는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뚜벅뚜벅 오늘 상회로 향할 것입니다.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