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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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가
  • 조경원 편집장
  • 승인 2022.01.25 13:27
  • 호수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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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밥 한번 먹자’ 이 말은 성사 여부를 떠나 참 쉽게 하는 말이다. 둘 사이의 관계에서 다시 만날 가능성을 열어둔 ‘여지를 남긴 말’이라 딱히 부담이 없다. 하지만 요즘 ‘밥’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무색할 정도가 됐다.

지난해 선배 교무의 모친이 열반해 조문할 때의 일이다.

향을 사르고 심고를 올린 뒤, 서둘러 식장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그런 내게 선배는 “밥은 먹고 가야지”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장례식장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평소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밥은 먹고 가라’는 말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생전 일면식 없는 그의 모친이지만 고인이 된 당신의 마지막 길에 자녀가 대신해 밥상을 차려준다는데, 뿌리칠 수 없었다. 밥상을 말끔히 비우며 고인과 연을 맺고 앞길을 축원했다.

아직 그때 기억이 생생한 것은 ‘밥’이라는 말이 부담이었다기보다 고마워서였는지 모른다. 사실 ‘밥 먹고 가’라는 말을 주고받은 지 꽤 됐다.

지금은 선뜻 말하기 어려운 ‘밥 한번 먹자’

한국문화 특히, 대중공양이 자연스러운 우리 교단의 문화는 어디를 가나 밥 먹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교당 살림이 넉넉지 않아도 밥 한끼 내주고 먹을 여유는 있었다. 도가(道家)의 밥은 사회의 밥과 다르지 않은가. 소태산 대종사는 “밥 먹는 데에도 공부가 있다”(<대종경> 수행품 32장), “상대(부처)와 밥을 먹으면 자연히 보는 것은 그(부처)의 행동이요, 듣는 것 또한 그의 말씀이다”(<대종경> 변의품 16장)고 했다. 밥 한번 먹는 것을 작은 일이라 방심하지 않는 게 원불교의 밥 문화이다. 그 안에 공부가 있다고 해서 어려운 일이 아니라 쉽게 하는 말이면 좋겠다.

텅 빈 장례식장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슬픔을 달랠 상주의 곁에 잠시 앉아 숟가락을 들자.

마음 한편에 밥상을 내주고 밥상을 받을 공간을 비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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