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차원에서 볼 수 있는 마음공부 ‘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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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차원에서 볼 수 있는 마음공부 ‘중도’
  • 박시형
  • 승인 2022.01.25 13:33
  • 호수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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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Z세대를 위한 마음공부1
박시형강남교당 교도서울대학교 연구교수
박시형
강남교당 교도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2년전인가, 필자가 소장으로 근무했던 아시아환경연구소 교수들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화제 가운데 하나였던 정부의 탈원자력 정책에 관한 토론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환경전문가들은 탈원자력발전과 환경보호를 등식으로 간주한다. 원자력발전이 싼 전기료를 보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르르 치를 떤다. 이처럼 대부분 토론에서는 자기의 의견을 미리 정해놓고 이편저편 관점에서 논쟁을 벌인다. 이럴 때 필자가 원불교에서 배운 것은 '중도'라는 것을 실제 생활에서 발견하는 기술인데, 이편저편 모두 일리가 있다는 것도 중도이고, 토론하면서 서로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중도이기도 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편저편 이외에 다른 차원의 지혜를 발견하는 것도 중도라고 생각한다.

비윤리를 저지른 여인에게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 그 여인의 행동에 도덕과 비도덕성을 나누기보다, 돌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죄가 없는지’를 물은 예수는 중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할지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 3.1운동을 ‘개벽의 상두소리’라고 말한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 역시 중도이다. 인도의 아힘사 운동(무저항 운동)에 참여해 달라고 간디의 제자들이 요구했을 때, ‘참여, 비 참여보다 거기에 에고가 들어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고 말한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 역시 중도 행위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그 가르침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외부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지혜를 인류에게 남겨준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이라는 지역, 현재라는 좁은 시각을 벗어나서, ‘중국의 원자력발전이 한국의 환경과 안전에 직접 영향이 더 크고 한국의 원자력발전 또한 일본의 안전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 한국이 원자력 안전기술에 있어서는 선진국이니, 삼자가 합력해서 안전기술을 증진시키는 것이 한국의 환경과 안전에 더 중요하고, 폐기물 역시 우주로 보내는 기술이나, 값싸게 반감기를 줄이는 기술발전을 보면서 정책을 장기적으로 결정하자’는 필자의 논지를 듣고는 환경전문가들이 ‘아하, 그런 것도 있군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중도’는 이렇게 마음을 크게 열고 다른 차원을 열어보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한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 사회 양극화, 세대 간 갈등, 젠더, 인구절벽, 심지어 국가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암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 중도에서 해답을 찾으면 어떨까한다. 우리가 원불교에서 배울 것 역시 중도이기 때문이다. 매 순간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더 큰 차원에서 볼 수 있는 마음공부 말이다.

지난해 1년 동안 필자는 ‘과학기술과 정신개벽’이라는 주제로 한울안신문 독자와 대화했다. 양자역학으로부터 인터넷, 블록체인, AI라는 물질 개벽시대에, 더욱 황폐화하는 마음을 어떻게 잡아나가는가 하는 힌트를 원불교의 마음공부로부터 구했다. 새해는 이 세대의 문제를 중도의 틀에서 다루려 한다. 혼자서가 아니라 WMZ세대와 같이 말이다. 요즘 회자되는 MZ세대 앞에 전쟁세대 W(ar)를 붙였다. 아마도 40년대부터 60년대 정도까지 한국에서 출생해서 살았던 사람들을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세계 2차 대전, 한국전쟁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자란 세대, 그리고 상상하기 힘든 비참한 상황에서 끈기 있게 살아남은 세대이다. 또한 냉전(공산주의, 자유주의)이라는 갈등의 틀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세대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W세대는 자식세대인 MZ세대에게 꼰대라는 소리를 듣고 쩔쩔 매는 세대이기도 하다. M세대만큼 인터넷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Z세대만큼 세상과 소통하는 것도 서툴다. MZ세대가 왜 촛불을 드는지, 왜 결혼을 거부하는지, 왜 저축은 하지 않고 놀이문화에 골몰하는지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에 비해서, W세대가 할 줄 아는 것은 그저 예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뿐이라고 MZ세대는 느낀다.

해결의 단초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소태산 대종사는 어떻게 대응하실까? 쩔쩔 매실까, 아니면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한 해답을 내실까?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중도’에서 해답을 보여주실 것만 같다. ‘진리를 체득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묻는 제자에게 부초와 같이 떠도는 인생에서 ‘무언가 뿌리를 박은 느낌’이라고 말한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이 곧 힌트가 된다. 떠도는 인생은 무언가를 두개로 나누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생이다. 이편저편에 서기만 하고 다투는 인생이다. 이런 태도는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후회하게 한다. 이제 ‘중도’라는 화두를 굳건히 세우고, 한 차원 더 높고 넓은 해답을 찾아보자. 1년 후, 안 풀릴 것 같은 막막한 현재의 문제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튼튼히 뿌리가 잡힌 인생을 가져다주는 숙제 아니 행복거리가 된다고 느낄 여정을 떠나보자. WMZ세대가 다 같이 손을 잡고 말이다.

1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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