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 법문] 험한 길에서 ‘일심’ 공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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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 법문] 험한 길에서 ‘일심’ 공부가 되다
  • 라도현
  • 승인 2022.08.18 17:18
  • 호수 1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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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 법문21
라도현<br>화정교당 교도<br>
라도현<br>화정교당 교도<br>

 

대종사 이춘풍으로 더불어 청련암(靑蓮庵) 뒷 산 험한 재를 넘으시다가 말씀하시기를 「험한 길을 당하니 일심 공부가 저절로 되는도다. 그러므로, 길을 가되 험한 곳에서는 오히려 실수가 적고 평탄한 곳에서 실수가 있기 쉬우며, 일을 하되 어려운 일에는 오히려 실수가 적고 쉬운 일에 도리어 실수가 있기 쉽나니, 공부하는 사람이 험하고 평탄한 곳이나 어렵고 쉬운 일에 대중이 한결같아야 일행삼매(一行三昧)의 공부를 성취하나니라.」

<대종경> 제3수행품 34장

위 법문에서 소태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시는 일심(一心), 우리가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흔히 말하는 그 일심이 아닙니다. 가령 누가 게임에 온 마음을 쏟고 있다거나, 정거장이 지난 줄도 모르고 대화에 열중하거나 하는,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위에서 가리키는 일심은, 그야말로 반듯하게 깨어있는 마음, 안팎으로 밝고 고요하게 깨어있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 일심은 부처와 조사가 지니고 있는 마음이며, 진리적 수행에서 나타나는 텅비고 그윽하고 청정한 마음입니다. 비록 중생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이 아무데도 머무는 곳 없이, 밝게 깨어서 모든 분별이 떠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아니면 위 법문에서 이르신 일행삼매(一行三昧)가 될 수 없습니다.

험하고 평탄한 곳이나 어렵고 쉬운 일에 대중이 한결같다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단순한 집중이나 열중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부인이 참으로 이 일심을 알았다고 하면 이미 부처와 조사의 공부길을 다 안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 일심이라는 용어는 불교에서 오래 전부터 써온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통일신라시대의 원효스님이 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일심이라는 용어가 나타나는데, 우주만유의 근본으로서 일체의 상대가 끊어진(絶對), 우리의 본성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전> 3수행편 제1장 일상수행의 요법에서 심지(心地)라고 나와 있는 것이 바로 이 일심입니다. 일원의 진리는 공··(空圓正)으로서, 이 공원정의 성품을 마음이라는 글자로써 표현한 것이 이 일심입니다.

일심의 경지를 설명하자면, 과거 조사들의 게송 가운데 이러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心月孤圓 光呑萬象(심월고원 광탄만상) 두렷한 일심의 지혜광명이 온 시방을 다 품었다는 것입니다. 우주만유 가운데 일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心性無染 本自圓成(심성무염 본자원성) 일심은 그 무엇에도 물듦이 없으며, 본래 스스로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 일심을 늘 한결같이 지니고 사용하라는 가르침이 <정전> 2교의편 제1장 제3절 일원상의 수행이며, 이것이 일행삼매(一行三昧)입니다.

8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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