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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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조경원 편집장
  • 승인 2022.10.13 13:49
  • 호수 12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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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 가을이다.

기세등등했던 더위도 한풀 꺾여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 해이해진 몸가짐은 단정함으로 제자리를 찾는다. 고개 숙인 곡식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린다.

가을은 수행자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마음공부를 여읜 이는 적은 결실을 탓하고, 이른 봄부터 마음공부에 힘쓴 이는 훌륭한 결실을 앞두고 있다. 누군가는 걱정하고, 누군가는 혜복을 장만하는 시기이다. 적게 거두었다고 상심하지 말자. 마음에는 사시(四時) 순환이 없다. 아직 남은 날이 많다. 결실과 참회의 계절, 가을은 아직 여유롭다.

가을이 오면 단출한 차림으로 버스에 몸을 맡길 때가 있다.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나의 마음은 황홀한 빛깔로 물이 든다. 한참을 물들고서야 목적지에 내리면 단골 찻집이 차향을 풍기며 맞이한다. 코끝의 향은 몸속에서 돌고 돌아 육근(六根)을 자극한다. 연필을 꺼내 종이에 끄적거리면 이내 하나의 글이 완성된다. 대부분 졸작(拙作)이나 가끔 쓸 만한 글도 있다. 적은 차비(車費)와 차비(茶費)로 앞일을 채비하니 그것으로 좋다.

가을엔 보고 싶고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권유한다. 고은 시인은 가을편지에서 ‘가을엔 편지를 할 테니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달라’고 했다. 받는 이가 없더라도 누군가를 생각하며 쓰는 글이면 아름답지 않겠는가. 연인을 향하면 연문(戀文)이요, 해(年)를 돌아보면 참회문(懺悔文)이요, 진리를 각하면 오도송(悟道頌) 이듯이. 그렇게 글이 말로 되고, 말이 행동으로 익으면 생각지 않은 답장이 올 때도 있다.

정산종사는 편지를 즐겨 썼다고 한다. 지방의 교무로부터 상서(上書)가 오면 답장을 빠뜨리지 않았다. 회답안 첫 머리는 ‘교무와 지부장을 비롯하여 그곳 대중이 두루 안녕하신지?’로 시작했다. 자비행이 그대로 드러나는 문구이다. 올 가을, 교단과 세상의 구석에 있는 어떤 이에게 편지로 따뜻함을 전하는 것은 어떨까?

10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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