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깨우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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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깨우는 것들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1.18 19:58
  • 호수 128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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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신 교무

이 한겨울 근심 걱정 없이 보턴 하나만 누르면 남극의 열대지방처럼 아파트에서 반팔을 입고 지낸다. 거기에 뜨거운 물을 마음껏 흘려 보내며 설거지나 샤워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곳 산중에는 이른 초겨울부터 강추위가 시작되었다. 흰눈으로 뒤 덮히고 연일 영하 13도 안팍의 뼈속 깊이 스며드는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위급한 상황이기에 정해놓은 날짜에 보일러 교체 작업을 해야만 했다. 신축 당시 건물 안에 넣었던 산비탈 반지하에 있는 보일러 3대를 꺼내고 새로 설치해야 한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다.
보일러를 밖으로 꺼낼 수 없어 벽을 자르고, 긴 진입로에 염화칼슘을 뿌리며 대형 크레인 포크레인 트럭 등의 장비들이 동원 되었다.  크레인에 의지하여 매달린 800키로의 대형 보일러는 지붕 위까지 아스라이 오르내리며 여럿이 동원된 인부들은 지렛대를 이용하여 안간힘을 다하여 실내 안팎으로 물건을 이동하게 된다.
산비탈 경사가 심하고 빙판길이라서 위험천만한 고난도의 일이 진행되었다.  이 공사의 책임자는 잠 못 이루고 고민하며 예정보다 여러 날이 되어서야 안전하게 이 일을 성사시켰다. 
이를 지켜보며 현장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노동자의 공덕을 통감하게 된다. 
우리가 영원할 것같이 누리고 있는 따뜻하고도 편안한 모든 물질문명의 혜택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거룩한 선물이다.
내가 살았던 인도 라다크 북인도 히말라야의 설산에는 5월 중하순이 되어야 긴 겨울을 지나 비로소 육로가 열리게 된다. 그러면 화물 운송수단인 덤프트럭은 대협곡의 절벽 위 도로를 굽이 굽이 끼고 돌고 돌아 4,5천미터의 상봉을 지나 물류를 이동한다. 어느날 버스를 타고 지나는 길인데 나는 이 덤프트럭이 급커브 길에서 거꾸로 서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운전 기사는 열린 문을 통해 가까스로 기적같이 나와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벌벌 떨며 울고 있었다.  
내가 이 땅에 머문다는 것은 이 분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자본의 논리에 물들어 소비가 아름다운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주어진 공간 안에서 차고 넘치는 풍요로움에 젖어 한량없는 은혜와 인과를 잊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행복이라고 여긴다.  
그 시절 추위에 웅크리며 하늘에서 별빛 쏟아지던 청초함이 그립다. 보름 무렵이면 쟁반 같은 달이 설산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며 우리 마을에 내려올 것 같은 기억이 내 허리를 곧 추 세우게 한다.  
콧물 뒤 범벅한 검붉은 얼굴에 막대기 하나 들고서 마냥 기쁘게 뛰노는 자줏빛 치마 승복을 입은 동자승들이 눈에 선하다. 이들의 투명한 눈빛에서 어제의 우리들을 비추어 본다.
 누군가가 매서운 추위를 인내하며 벼랑 끝을 딛고 일어서는 그 고귀한 공덕속에 오늘의 내가 살아 있음을 잊지 말자.

 

유성신 오덕훈련원장

1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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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웅 2023-01-24 18:49:14
나무붓다달마상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