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품었던 이 회상에 대한 포부와 신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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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품었던 이 회상에 대한 포부와 신심을 받았다”
  • 박순용 편집장
  • 승인 2023.02.01 12:35
  • 호수 12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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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년인 아버지 주산종사
장롱속 조끼 유품 희사
새회상 만난기쁨으로 살아가길

서울 교화 100년을 준비하는 서울 교구의 일을 맡으면서 나는 주산종사를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뒤늦게 주산 종사 회고록을 읽으며 <영원한 푸른 청년의 기상>으로 대변되는 주산종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음은 스승님께, 몸은 세상에....라는 출가서원을 했던 주산종사는 원기 11년에 경성 출장소 초대교무로 부임을 했었다. 그것도 20세의 나이로.

여기까지가 역사속에서의 주산종사였는데 서울교화발전재단 은산 송경은 이사장을 만나면서 주산종사는 현실로 구현되었다.

은산 송경은 정사는 주산종사의 4남으로 현재 신림교당에 다니며 원덕회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사울교구 교화발전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크게 없습니다. 4살에 돌아가셨으나 혈연과 법연의 중요한 스승님이시지요.”라는 은산 송경은 교화발전재단이사장(이하 이사장)은 청년의 얼굴인 아버지 사진을 크게 그려놓고 옆에 어머니 사진도 그 나이에 맞는 사진으로 만들어 놓으니 마음이 좋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은산 송이사장은 어릴때의 추억을 이야기 하자 그야말로 교단사에서 나오는 어른의 이름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십타원 양하운 외할머니를 비롯 백부였던 정산 종사, 원불교 총부에서 어린 시절을 온통 귀여움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은산 송이사장은 외할아버지인 대종사님의 신선한 청량제였다고 전한다. 어린이의 천진난만함은 성인의 마음과 통해서였을까.

은산 송이사장이 추억을 꺼내 이야기하는데 머릿속에 그 장면들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주산종사를 그리워하는 80대 제자들에게 감동을 받았고 주산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제자들이  주산종사의 유물 전시하는 것을 보고 또 감동을 받았던 차에 신성해 박물관장의 노력이 더해져서 아껴두었던 주산종사의 직접 쓴 유품들을 희사했다‘고 전하는 은산 송이사장.

 ”어머니가 장롱 속에 고이 모셔뒀던 조끼가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인데 아버지의 가슴을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조끼가 아버지의 포부와 신심을 전해주셨다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육타원 이동진화 선생님께 새벽 좌선과 독경·참회문 등을 하면서 아침시간을 보내는 것을 배워 지금껏 공부를 하고 있으며 팔타원 황정신행 선진을 좇아 교육계에서 일생을 보낸 은산 송이사장은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원불교정신에 입각하여 훈화했다. 또 학교내 법당을 마련하여 학생들의 마음공부에 힘쓴 결과, 지금도 교내법당을 통해 학생들이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며 흐뭇해 한다.

교육현장에 전하고픈 이야기는 ”교육은 실력을 기르는 것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실력은 인성“이라고 강조하고 교단을 위해서는 교당의 규모화를 위해 합칠 것은 합치는 통합교당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은산 송이사장은 초기의 교단정신인 이소성대와 절대신성, 그리고 절대단결 등은 절대 변해서는 안되는 불변의 정신이어야 하고 이를 운영할 때는  신축적으로 변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교화 100년‘을 한해 앞둔 시점에서 은산 송이사장이 서울교구 교화발전재단 이사장을 맡은 일이나 원기 11년 주산종사가 서울 초대 교무로 부임한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진리는 고금을 통해 변함이 없고 시방을 두루 해도 다함이 없으니 우리는 이진리를 체받아서 진리적 생활을 하자>라는 게송을 남긴 주산종사의 진리에 부합하는 정신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 해 온 은산 송이사장의 서원은 한가지다.

신심있는 후손과 후진들이 새회상을 만난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 어머니가 쓰신 일기에서 철야 삼경에 등불을 얻은 심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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