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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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소리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3.08 21:44
  • 호수 1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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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順理와 역리逆理 사이

인천교당 김대은 교도

 

세상은 좀처럼 내 뜻대로 운용되지 않으며 내 바람대로 움직여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때로는 실패에 낙담하고 패배에 절망하여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운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의 성패에는 반드시 그 저변에 배경이 자리하고 요인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불이 지니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성질은 사용 목적과 그 불을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와 기술에 따라서 실현되는 결과이지 불의 본래 속성은 아니다. 유용성과 무관하게 불은 그 성질이 인위적이고 도전적이며 그래서 분수처럼 상향 지향적이다.  
이에 비해 물은 폭포처럼 자연적이고 순리적이며 그래서 하향 지향적이다. 직면한 상황을 회피하거나 주어진 사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주변 사물과 충돌하거나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다. 물은 생명이 잉태되고 생존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사용자의 자세나 재능과 무관하게 타협적이며 상대와 힘의 우열을 겨루지 않고 누구에게나 우호적이고 유순하다. 
대종사께서는 계절의 변화에도 순서가 있듯이 모든 일에도 차례가 있으며 그것을 찾아 행하는 것을 순이라 하고 일의 차서를 거스르고 자기 능력에 못 미치는 일을 억지로 하며, 상대가 원하지 않는 일을 권하거나 상대의 기분과 마음을 거스르는 행태를 역이라 했다. 그래서 순과 역을 잘 구분해서 역을 경계하고 순을 쫓는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거의 없다고 이르셨다. 
열매는 꽃이 져야 맺고 결실은 씨를 뿌려야 얻지만 이 과정에는 지긋한 시간의 흐름이 요구된다. 경색을 유발하고 교착을 촉발하는 역리와 달리 순리는 공감을 일으키고 소통을 주도하게 한다. 
역리의 개입으로 산이 물로, 물이 산으로 여겨지는 순간 우리의 내면은 비틀대고 혼란스러워지며 삶은 매순간이 사라짐으로 파악되면서 허무해진다. 반면에 순리의 덕분으로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인식되는 순간 우리의 내면은 평온을 회복하고 순탄해지며 삶은 매순간이 변화로 자각되면서 허무를 여읜다.
육신은 과잉으로 부풀고 정신은 탐ㆍ진ㆍ치로 닳고 허덕이는 삶을, 몸은 절제로 가볍고 마음은 법으로 충만하고 호쾌한 삶으로 전환하는 방식은 역리의 삶을 순리의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종착점을 향해 질주하는 길이 아니라 이 순간을 향해 달리는 길 위에서 만나는 대종사님의 뜻도 거기에 있다.        김대은 교도(인천교당)

근원처를 찾아 불공하면 반드시 성공

불공이라는 말은 과거 불교에서 발생된 어휘로 불보살께 올리는 모든 의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는 뜻으로 통용되며 사용하고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삼국시대에는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의 목적이 구국과 불국토건설의 큰 뜻이었는지 모르지만 현재에 있어서 통용되는 불공은 개인의 소원성취를 위한 이기적 신앙의 표상으로 대표되어 있다.
새 시대의 젊은 종교인 우리 원불교도 불공의 수행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불공이 과거 종교와 다른 점은, 100년 전 소태산 스승님께서는 잘못된 기복 불공의 상황을 판단하시고 보다 진리적이고 사실적인 종교의 신앙과 수행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불공 방법으로  소태산 스승님께서 일러주신 바 그 첫째는 사은 당처에 직접 올리는 실지불공이고, 둘째가 형상 없는 허공법계 법신불께 올리는 진리불공이다. 
실지불공의 중요성과 필연성을 짚어주시려 예화를 들어주셨고, 다음에 진리불공의 방법을 실지불공의 뒤에 이어 상세히 알려주셨다는 점을 의미있게 생각하여야 한다
실지불공이 24시간 일상생활의 모든 상대처와 모든 행위에 실지불공이 바탕이 되어 행동한다면 최고의 인격자가 되며, 수행자가 되며, 보은자가 되는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실지불공의 방법은  획기적인 새로운 신앙의 한 방법인 동시에 인격수행의 큰 혁신적 방법인 것이다.
앞으로의 정신개벽 세상에  꼭 필요한 진리적 종교의 신앙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사실적 도덕의 훈련의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진리적 불공의 방법은 그동안 모든 종교의 신앙방법에 큰 차이가 없으나 신앙인이며, 공부인으로서 할 불공의 방법으로 진리적 불공을 말씀하시었다.
진리불공의 기본은 전일의 나쁜 습관과 죄과를 진심으로 참회하고 후일에 선행을 진심으로 다짐하는 것이 선행 조건이며, 이런 참회와 반성, 다짐과 실천이 자연 개과천선되어 불공의 위력으로 나타나지는 것이 감응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단순한 기복을 요구하거나 요행이나 기적을 바라는 불공은 원만한 사은 신앙의 근원을 삼는 불공 방법이 아닐뿐더러, 각자 스스로가 부처임을 포기하는 신앙인 셈이다.
근자에 우리 각자가 개인, 가정 혹은 교당에서 하고 있는 불공 또는 진리불공의 방법으로 하고 있는 심고와 기도가 기성 종교의 답습을 닮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며, 소년 시절의 소태산 스승님께서는 깨닮음을 위한 지극히 순수한 마음의 삼밭재 기도와 구인선진의 세상을 건지고 중생을 제도하고자 목숨을 내던진 혈심 기도처럼 반드시 성공할 불공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요약하자면, 소태산스승님의 가르침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다. ’불공법도 사실적  불공과 진리적 불공이 있다. 이는 참회의 이참과 사참과도 일맥상통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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