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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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2)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3.15 20:24
  • 호수 1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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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주산종사

[편집자 주] 서울교화100년을 앞두고 서울교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산종사를 조명하며 젊은 청년의 기상으로 살아있는 주산종사를 기리며 삶과 일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 주산종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수필하신 법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실천하신 법력’이다…”라고 하신 주산종사 추모사업회 간행사 말씀처럼 “… 문집이 책장에만 꽃혀 있지 않고 모든 원불교인들이 푸른 청년의 기상으로 읽고, 이 세상의 아픔에 동참하는 지남으로 읽었으면 한다. 꼭 그래주길 바란다.”는 간행사 말에 눈길이 꽃혀 독자제위들과 함께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지면을 편집하고자 한다.

이미 나와 있는 책이지만 <한울안신문>의 눈길에 따라 함께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지면이니 색다른 일화를 기대하는 독자들은 혜량해 주시길 바라면서 연재를 하고자한다.

시간이 나서 항타원님과 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어김없이 ‘주산종사의 위대함’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후진들이 그런 어른의 인격을 추모하고 닮아가야 된다’시며 뼛속 깊이 넣어 주십니다. 

그 내용은 항타원님께서 ‘주산종사’ 1주기를 맞아 여자 전무출신을 대표하여 올린 고사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요약하면 ‘주산종사의 인품’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열거하셨습니다. 

 

순일공심 대의당당 

명랑쾌활 태산고송 

자비후덕 정중수행 

춘풍화가 자상친절 

 

이처럼 항타원님은 저에게 아버지의 존재에 관해 최초로 깊은 관심을 갖게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부심과 존경심 그리고 그리움을 눈물겹게 불러 일으켜 주셨습니다. 

저는 서른이 넘어 직장을 팔타원님이 설립하신 학교법인 휘경학원의 휘경여자중·고등학교로 옮겨와서 이후 40년 가까이를 그 어른과의 인연 속에서 보냈습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경험이 일천한데도 불구하고 저를 파격적으로 간부교원으로 임명하셨습니다.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30대 교감으로, 또 몇년 후에는 40대 초반의 젊은 교장으로 승진이 계속되었습니다. 

왜, 아직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저를 그렇게 신임하고 일찍이 중책을 맡기셨는지 당시에는 얼떨떨해서 그 이유가 잘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팔타원님은 자기 가족보다 결코 못지않은 신임을 저에게 주면서 지극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곤 하셨습니다. 

저를 대하실 때에는 언제나 ‘대종사님을 주세불로 받들던 당시’의 말씀들을 해 주셨고 그럴 때마다 빼놓지 않고 아버지 ‘주산종사의 일화’ 등을 존경을 가지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3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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