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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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10)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5.17 13:47
  • 호수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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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산종사으 구도역정기

원기 10년 4월 26일 정수위단 제1차 보궐 및 대리 조직시 주산종사는 약관 19세의 나이로 이산 이순순 대호법의 대리로 수위단 감방 단원이 되었다. 원기 11년에는 경성출장소 초대교무로 파견되어 1년간 서울교화의 기틀을 다졌으며, 원기 12년에는 다시 총부 서무부 서기로 봉직하였다. 
원기 13년에는 연구부 서기로 전임되어 교단 최초의 월간지인 『월말통신』을 간행하였다. 의로움에 찬 붓으로 날카로운 시대감각을 가지고 회중 내의 상황보고와 현실에 적절한 대종사의 법설을 게재하여 회원들 공부방향의 지침서로 삼게 했고, 회원들의 공부건 발표와 각지 예회상황을 기록하여 교단사의 중요한 사료가 되게 했다. 이러한 주산종사의 문화활동과 매스컴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 교단의 『원광』지와 (원불교신문)발간을 비롯한 언론 출판문화의 초석이 되었다. 
원기 14년에는 정식수위단원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교무부장의 중책을 맡아 『월말통신』을 발전시켜 『월보』를 간행했다. 
원기 17년에는 영광지부 교무부장겸 지부장으로 발령되어, 한발과 폭염으로 인한 극심한 재해를 극복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어 원기 22년에는 교정원장에 피선되었고 교무부장과 감찰부장의 책임까지 겸하여 교단발전에 혼신의 정열을 다하였으며, 원기 24년에는 총부 교감으로 부임하여 경진 동선에 심혈을 기울여 법풍을 진작시켰고 교법실현에 앞장서 상시일기 정기일기며, 매일 좌선 시간에는 철주부동의 자세로 진경에 드시는 모습을 학인들에게 전수시켜 이 선(禪)에서 오늘의 교단원로 수십인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동하선의 전후에는 상설학원 체제로 이끌어 학원생에게 교단의 주인정신과 신심 공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일일이 개인지도에 전념하였으며 그때 학원생이었던 원로들 중에는 주산종사의 따가운 회초리가 약이 되고 거름이 되어 교단의 중심인재가 되었다. 


5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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