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화100년을 향한 서울교구 교당탐방 서울교당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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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화100년을 향한 서울교구 교당탐방 서울교당 ②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5.24 16:18
  • 호수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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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교당 16개 교당의 연원
교단 난제에 늘 앞장서

 

«편집자 주»
서울 교화 100년을 앞둔 올해부터 내년까지의 일정으로 서울교구의 교당들이 어떻게 탄생되었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또, 연원교당은 어떻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온고이지신이라 옛것을 살피다 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고 준비할 수 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개인적으로도 서울 교화 100년을 살피다보면 창신동 터와 돈암동 비석까지는 알고 있으나 딱 거기까지인게 많이 아쉬웠다.
내년 서울 교화 100년을 앞두고 한울안신문에서는 서울교구내 서울에 있는 교당의 연도별 탄생과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교당탐방의 순서는 원기 11년 이후 시대적인 순서로 하여 서울교구 홈페이지와 서울 교당 93년사를 비롯하여 원불교 100년 총람을 참고하고 현존하는 교당을 탐방, 교당의 현주소를 기록하기로 한다.
내년 원기 109년 서울 교화 100년에 서울에 있는 교당들의 이야기도 함께 마무리되기를 염원하며 그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원기 30년(1945) 해방과 함께 경성지부를 서울 지부로 명칭을 변경한 불법연구회 서울 지부는 불법연구회 귀환 동포 구호소를 운영하여 무료급식과 무임승차권을 지급했다. 서울 지부 회원들은 전재 동포 구호사업을 원기 31년 3월 31일까지 최선을 다했다. 
서울지부는 용광사를 법적으로 우리 교단에 완전히 귀속한 것은 전재동포구호사업을 통한 국가 기여도와 성의철과 그의 부군 김동성의 영향력으로 원기 45년 (1960) 등기를 받을 수 있었다.
원기 33년 원불교로 교명을 바꾼 불법연구회 서울지부는 제8대 용타원 서대인 종사가 부임하였고 혼란한 정국 속에서도 서울에 유일한 교당이어서 사람들로 늘 북적였으나 교화 기반을 확장 해 나가기는 어려웠다. 행사 교도 30-40명 선이었다. 야학으로 교화를 해보려 했으나 6.25로 물거품이 되고 9.28수복과 함께 서울 지부는 국군에게 징집되었고 예회를 보며 복구한 것은 원기 37년(1952)이었다.
제10대 예타원 전이창 교무는 서울 시내 순교를 통해 50~60명으로 늘어나면서 해방 전후의 교세를 회복할 수 있었고 전란 중 개성에서 내려온 교도들 중심으로 새로운 교당 설립의 논의에 따라 원기 41년(1956) 인사동에 교당의 모습을 갖추니 종로교당의 출발이었다.
원기 54년 서울회관건립추진위원회가 사업자의 부도로 난관에 봉착하면서 서울교당이 담보로 제공되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은행관리에 들어가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원기 71년 말 서울교당 법회 출석은 일반인 약 100명 청년 40명, 학생은 30여명, 어린이 20여명이었다. 제16대 시타원 심익순 교무가 부임한 원기 75년부터 원기 80년도까지는 교리공부를 강화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원기 81년(1996)에는 교화단 법회 활성화로 원기 82년(1997) 서울교당 산하 15개 교화단 활동으로 연 120회 단회를 개최하였다.
원기 86년(2001)에는 제19대 간타원 박혜원 교무가 부임했고 원기 90년(2005) 중앙총부 교정원을 중심으로 서울교당 재개발 논의가 시작되어 원기 91년(2004) 서울교당의 해체와 원기 94년(2009)  신축 봉불식이 거행되었으나 교당 설립에 이르기까지 불협화음으로 아픈 상처를 지니게 되었다.
제20대 왕산 성도종 교무가 부임하여 원기 95년(2010) 서울 교당 비전추진위가 결성되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원기 100년에는 신입교도 100명의 입교식도 거행했다.

공산 황중홍 교도회장이 서울 교당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있다.
(가운데 김혜원 교무, 심기현 기획재정분과위원.)

현재 서울교당은 제22대 성타원 최심경 교무와 김혜원, 김도형 교무가 근무 중인데 서울의 종갓집 교당으로 지난 3월 서울교당 서울 교화 100년 비전 선포식을 거행하였고 <365 릴레이 기도>를 76일째 시행하는 등 서울 교화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공산 황중환 서울교당 교도회장은 “99년의 역사를 되짚어 보다 보면 서울교당의 재건축과 관련, 아픈 역사가 있어 가슴이 저릿하다”라고 전하며 “서울교당 교도들은 언제나 모태신앙으로 과거 역사를 공유하면서 과거, 현재,미래에도 대종사님이 경성 즉 서울에 온 뜻이 전해지는 그런 교당이 되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원기 75년부터 서울교당과 인연이 된 공산 황 회장은 그 때 그 시절의 교당이 눈에 선한 듯 설명하면서 천여래 만보살의 회상임을 잊지 말자고 덧붙였다.
현재 서울교당의 기획재정분과를 맡은 심기현 교도는 “365 릴레이 기도를 통해 서울교당 교도들의 힘이 서서히 살아나고 공부와 기도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고 있다”며 내년의 성과를 기대하기도 했다.
서울교당을 4년여 만에 방문해보니 서울교당 앞길에는 청년들이 삼삼오오 커피를 들고 평일인데도 지나다닌다. 그러다가 불쑥 교당을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길가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눈 밝고 귀 밝은 이들이 100년 전 그 때처럼 이 법과 대종사님을 알아보는 시간이 머지않은 것 같다.
서울교당이 다시 종갓집의 명성을 찾아가는 이 봄이 아름답고 따스한 까닭이다. 


5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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