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화100년을 향한 서울교구 교당탐방 2. 종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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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화100년을 향한 서울교구 교당탐방 2. 종로교당
  • 박순용편집장
  • 승인 2023.05.31 13:39
  • 호수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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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화 30년만에 설립된 두 번째 교당
못자리판 역할로 화려한 역사 지녀

 

 

«편집자 주»
서울 교화 100년을 앞둔 올해부터 내년까지의 일정으로 서울교구의 교당들이 어떻게 탄생되었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또, 연원교당은 어떻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온고이지신이라 옛것을 살피다 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고 준비할 수 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개인적으로도 서울 교화 100년을 살피다보면 창신동 터와 돈암동 비석까지는 알고 있으나 딱 거기까지인게 많이 아쉬웠다.
내년 서울 교화 100년을 앞두고 한울안신문에서는 서울교구내 서울에 있는 교당의 연도별 탄생과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교당탐방의 순서는 원기 11년 이후 시대적인 순서로 하여 서울교구 홈페이지와 서울 교당 93년사를 비롯하여 원불교 100년 총람을 참고하고 현존하는 교당을 탐방, 교당의 현주소를 기록하기로 한다.
내년 원기 109년 서울 교화 100년에 서울에 있는 교당들의 이야기도 함께 마무리되기를 염원하며 그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원불교 종로교당은 원기 41년(1956) 6.25로 남하한 개성교당 교도들이 정산종사의 부촉을 받아 양형선 교도의 하숙집에서 출장 법회로 문을 열었다.
원기 41년 중앙교의회에 정식 선교소로 인가 받아 초대 이정화 교무가 부임하여 종로교당이 서울수도에 두 번째 교당으로 출범하였다.
수도 서울지역의 전진 발판으로 20개 교당과 7개 기관의 연원을 낼 정도로 서울 교화의 산모 역할을 했다. 
기라성 같은 역대 교무들과 혈심 혈성의 교도들이 만들어낸 종로교당의 역사는 이소성대의 정신을 설명하기에 충분하고 서울교당과 더불어 서울교화의 종가집으로의 위상을 보여준다. 
소태산 대종사가 서울교화에 뜻을 둔지 30년만에 서울에 두 번째로 일원상 법신불을 모셨다.
입정동 다다미방에서의 교도수는 20명이었으나 이내 100여명의 교도를 수용할 수 없어 원기 42년 인사동에 새로운 교당을 봉불했다.

원기 43년 교리 강습회를 열어 교도들의 신심을 고양시켰고 종로지소 교우회를 발족하였다.
원기 47년 인사동 건물이 철거대상이라는 통보로 새로운 건물을 찾았다. 
원기 48년 대산종법사의 서울에 교당 50개를 개척하라는 유시를 받들고 49년 의정부 교당을 봉불하고 같은 해 원남교당이 분가해 나갔고 뒤이어 송천, 신촌, 필동 등 연원 교당의 설립이 이어졌고 그 연원 교당이 뿌리가 되어 또 연원 교당을 창립했다.
 젊은 교도수가 많아지고 공부심이 많아져야 우리 미래가 활성화 될 것이란 믿음으로 학교의 교우회를 결성 하기로 하고 첫 번째로 고려대 학생회에 첫법회에 60명이 모일 정도였다.
교도수가 200명이 넘어가면서 인사동 건물로는 감당이 안되어 대산종법사의 유시에 따라 현재 위치인 낙원동 58-9주택을 매입, 현재에 이른다. 원기 52년 리어카로 이사한 종로교당은 은행 대출금을 150명이 계를 하여 갚았다. 원기 44년부터 53년까지 종로교당의  내실이 갖춰졌다고 회고했다.

원기 59년(1974) 신축 봉불을 한 종로교당은 교당운영에서도 직장인을 위한 수요법회 개설 및 재무위원회 구성을 했으며 이는 전국에서 처음 시도됐다.
원기 56년, 교화 3대 목표 추진 종합 1등을 차지한 것은 유아원을 설립해 어린이 교화에 역점을 둔것과 야외법회, 가족법회, 인화체육회 등을 통해 생활에 뿌리를 내리는 교화와 청년 교도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결과다.
이후 원기 68년부터 원기 79년까지 여러가지 조건들이 맞물려서 폭발적인 성장을 한 기간이라고 50년사에는  씌여있다.
원기 80년대에는 창립 일선 교도들이 물러나고 2세들이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하였으며 원기 84년부터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누구나 오고 싶은 교당을 목표로 열린교당을 지향, 문화교실을 마련했다. 또한 매년 풍물패를 앞세워 대각떡을 나눠주면서 원불교에 관심을 갖게했다.
종로교당은 원기 91년 50돌을 맞아하여 종로교당 50년사를 발간했고 원기92년 은덕문화원 봉불개원식을 했다. 원기 96년 종로 어린이·청년 뿌리찾기법회를 실시했다.
종로교당은 교당 설립이래 원불교 교단의 대소사에 못자리판 역할을 하였고 원불교 문화를 시민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하여 각계각층의 지식인들과 교류하여 원불교사상을 한국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크게 했다.
현재 종로교당은 교도들의 평균연령이 높은 편이고 주변은 상업지역이기 때문에 인구유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간타원 김명정 교무와 민산 김인강 교도회장은 “교당 유공인들의 후손들이 지속적으로 교당과 연결할 수 있도록 하여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직장인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을 계발하여 도심 교화의 방향을 찾아볼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서울교화 100년을 앞두고 종로교당은 화려한 역사를 계승하기 위한 <종로 어린이 청년뿌리찾기>법회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익선동 까페거리를 바로 지척에 두고 있어 내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홍보나 참여 행사를 마련하여 원불교를 홍보할 프로그램도 민들것이라고 전했다.

 

 

 


6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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