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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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13)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6.08 20:44
  • 호수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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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산 송도성 종사

2. 출가후기
원기 7년(임술) 16세에는 대종사님께서 부안 봉래산 실상사 우측 석두암에 계시사 휴양도 하시고 재래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혁신하여 본교의 교리와 제도를 초안하시었던 바 선생은 단연히 사가를 떠나 석두암으로 가서 시봉하는 한편 청법 혹은 법설기록에 전심력을 기울이었다. 
대종사 다시 출가의 이유를 물으시니 선생이 「헌심영부 허신사계 상수법륜 영전불휴」 (마음은 영부님께 드리고 몸은 공중에 바쳐 항상 법륜 따라 영겁토록 쉬지 않으리) 라는 문구를 써서 올리니 그 당시 옆에서 이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 근기 고준함에 찬탄하여 마지않았다. 
원기 8년(계해) 17세시에는 영산지부를 건축하는데에 서투른 솜씨나마 담부지역을 성심껏 수행하였고, 원기 9년(갑자) 18세시에는 익산 총부를 신축하니 공양주 역을 담당하여 성심성의를 다하였다. 
원기 10년(을축) 19세시에는 익산총부 서무부서기로 1년간 근무하였고, 원기 11년(병인) 20세 때 7월에는 경성 창신동 출장소 초대교무로 임명되어 교화발전에 노력하였다.  
원기 12년(정묘) 21세 때에는 다시 익산총부로 귀관하여 연구부 서기로 3년간 계속 근무하였는데 원기 13년(무진) 22세시 (음) 3월 26일 제 1대 1회 대총회시에는 희사유공인 성적표를 받으니 공부등위는 특신부요 사업등급은 제 4등 12인증 4호이었다. 
원기 14년(기사) 23세시 12월 21일에 선생은 대종사님의 맏따님 박길선씨와 영춘현(구조실)에서 신정예법에 의해 간단히 결혼식을 올렸다. 두 분의 결혼은 대종사님과 선생의 부친 송벽조 선생님이 진작부터 약속하고 계시던 터이라 이날 그 실현을 보게 된 것이다. 
원기 15년(경오) 24세에는 총부 교무부장으로 피임되었고 동시에 이산 이순순 선생의 대리로 수위단 감방 단원으로 입단하였으며 원기 16년 25세시에는 영산지부장 겸 교무부장에 전임되어 4년간 꾸준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원기 22년(정축) 31세시에는 익산총부 교정원장에 임명되어 총부의 제반 사무를 총괄하였고 정식으로 수위단 감방단원에 피선되었다. 
원기 24년(기묘) 33세에는 2월 25일자로 대종사님으로부터 주산이라는 법호를 봉수하였고 동시에 총부 교감으로 임명되어 3년간을 근무하였다. 
원기 28년(계미) 6월 1일 청천벽력 같은 대종사님의 천붕지통을 당하여 경악과 비통 가운데 초상범절을 삼가 봉행하였다.  

 


6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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