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14) 3. 주산 송도성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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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14) 3. 주산 송도성 종사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6.22 02:43
  • 호수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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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가후기 
원기 30년(을유) 39세시에는 8·15 해방을 맞이하여 국운의 광복과 아울러 교세발전을 기하기 위하여 귀환동포 구호사업을 교단적으로 전개하였던 바 선생은 난만상의를 거듭한 후에 몇몇 동지와 함께 상경하여 그곳 동지들과 합력 전재동포 구호와 전란고아 등을 모집하여 고아원을 설립하는 등 실로 안비막개의 맹렬한 활약을 개시하였다. 
원기 31년 40세시에도 계속하여 서울에 내왕하며 자선사업에 노력하던 중 건강의 실섭으로 부득이 도중에 귀관하게 되었다. 총부에서는 일반대중이 놀라고 걱정되어 신·구의를 대어 백방으로 구병간호에 전력을 기울였으나 마침내 약석의 효를 보지 못하고 동년 3월 27일에 40세를 일기로 거연히 불귀의 고인을 작하였다. 열반에 임하여 선생은 임종을 지켜보던 동지 몇 사람에게 「진리는 고금을 통하여 변함이 없고 시방을 두루 해도 다함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3. 열반후기 
슬프다 우리 인생의 일생일사란 자고급금 강악현우를 막론하고 불가피의 공도요 만고불변의 철칙이라 하겠지만 유독 선생은 아직 40세의 장년의 나이로 겸하여 도덕의 조예가 또한 깊으셨으매 일반 동지들은 반석과 같이 믿었고 따라서 기대와 촉망이 심히 컸거늘 그를 모두 저버리고 피안의 길을 떠나시었다. 
선생의 열반비보가 대중에게 공포되니 처자권속과 수많은 동지들은 호천통곡하며 망지소조하였다. 
선생은 소년시절부터 대도에 발심하여 성불제중의 대원을 올리었고 본교 초창당시로부터 23년간을 하루같이 대종사님의 두터운 신임과 사랑을 받아 가며 종과 횡 음과 양으로 회상에 끼치신 그 공덕이야말로 과연 위대하였나니 대종사님의 법설 수필과 본교의 대소 경전 편찬 및 회보편집에 지대한 업적을 남기었다. 
뿐만 아니라 필치 또한 절묘하여 구 휘호는 주련, 액자, 족자 등으로 총지부의 각처 각인에게 지금까지도 상당수가 귀중히 보관되어 있고 자적한 수양력과 심오한 사색이며 명철한 진리 해석은 일반 후진의 이목을 열어 주시었다. 
또한 선생은 모든 동지에게 친절 교화와 후진 남녀에게 교도영솔을 원만히 베풀어 누구나 선생에게는 심열성복하였으며 선생의 평상시 언행은 언제나 혜성처럼 빛나셨나니 본교가 앞으로 발전 융창함에 따라 선생의 명성도 더욱 더욱 빛나고 새로워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6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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