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으로 초대하는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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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으로 초대하는 명상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6.29 06:16
  • 호수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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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신 오덕훈련원장

 

정원의 언덕 돌틈에는 무수히 많은 꽃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피고 지고 있다. 이른 아침 보라색 아이리스가 긴 꽃대를 올려 영롱한 아침이슬이 찬란하게 맺히었다. 눈깜짝 할 사이 열차를 타고 스치듯 몇 정류장을 지나 왔을까. 어느새 단단한 씨앗을 물고 있다. 꽃의 사명을 다한 풀잎 같은 것들은 가지런하게 베어 버리고 다른 존재들을 기다리기 위한 공간을 마련해 놓는다. 가을을 준비하며 황금빛으로 무성하게 장식할 메리골드를 도량 이곳저곳에 옮겨 심었다.
유월, 녹음이 짙어가고 울창한 산림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집중과 알아차림으로 마음을 챙기며 숲속 명상을 떠난다. 몸과 마음은 지금 이 순간 찰라 찰라 여기에 머문다. 피부 깊숙이 파고드는 잣나무의 피톤치드향, 청량한 공기, 풀내음, 꽃내음에 부드럽고 긴 호흡으로 천지 기운과 내가 하나가 된다. 
줄기차게 흐르는 계곡 물소리, 또르륵 뻐꾹 짹짹 새소리와 수런 수런 들리는 바람 소리에 집중한다. 매 순간 변화하는 대상을 따라 마음과 기운을 모아 지금 여기에 머문다. 생각과 번뇌, 근심 걱정은 멀어지고 의식은 더욱더 명료하여 심신은 저절로 편안하게 조율 되어진다. 
문명의 그림자를 떨구어 버리고 나홀로 숲속을 걷노라면 다람쥐 한마리와 같은 자유로운 초자연인이 된다.  산천초목에 묻히어 한발 한발 명료하고도 여유로운 마음챙김은 깊은 호흡으로 이어진다.  
여기 거슬림 없는 천혜의 물과 공기 햇살과 흙, 툭 터진 하늘이 있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개미 한 마리 하늘을 날고 땅 위를 달리는 날짐승들이 공존 한다.  제 각기 그 자리에서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대합창의 오케스트라를 이루고 있다. 이 열린 공간의 대열에 온전히 머무는 일은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천상락이다. 
거대한 대자연의 질서를 이루는 숲이 보인다. 욕심으로 움켜 쥐려거나 급하게 달려가는 법이 없다. 천지 자연은 순리자연하여 역행이 없다. 조건에 순응하며 두루를 합하고 끊임없이 순환하여 맑히고 늘 새롭게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나의 말을 하지만, 숲속에 존재하는 침묵속의 대상들은 충만한 기운과 영감을 준다. 이곳에서는 스스로를 알아차림하며 회광반조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내 중심적인 거친 생각의 녹이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나간다. 
무엇이 우리를 변함없이 반기며 충만하게 할 것인가? 숲에는 언제 찾아와도 심신을 편안히 이완하여 거친 것을 털어내고 막힌 것을 소통하게 한다.  
교도정기훈련 일정 가운데 숲속명상은 오덕훈련원의 특화된 프로그램이다. 수양은 마음이 고요할 만한 조건과 배경속에 있을 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명상은 내면으로 향하는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취해 보아도 생각과 번뇌 아집, 탐진치로부터 벗어나야 삶이 자유로울 수 있다. 공자는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을지라도 낙이 그 가운데 있다. 의(義) 아닌 부와 귀는 뜬구름과 같이 결국 다할 날이 있으니 인간낙에만 탐착하지 말고 형상 없는 천상락을 수용하라.” 하였다.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 자연이다.
혼탁한 심신을 치유하고 자정작용 하는 거대한 숲의 빈 여백이 우리를 부른다. 조건없이 베풀고 무거운 짐을 저절로 내려놓게 하는 치유에 공간속으로 나 홀로 떠나자.


6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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