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화100년을 향한 서울교구 교당탐방 5. 돈암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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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화100년을 향한 서울교구 교당탐방 5. 돈암교당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6.29 06:47
  • 호수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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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잊혀졌던 돈암동 교화를 다시 만든 돈암교당 
지금은 교화공간 재배치로 지역과 교법을 나눌 꿈을 꾼다   

 

 서울 돈암동에 원불교가 자리를 한 것은 원기 18년 낙산 앵두나무골에 경성회관 신축기지로 580여평을 매입한데서 시작된다. 당시는 고양군에 속한 돈암리였으나 지금은 삼선 공원 부지로 개발되어 돈암동 회관 터 표지석만 남아있다. 
원기31년 돈암동회관은 한남동 소재 일인사찰 약초관음사로 옮겼다가 동년 6월 용광사에 교당(현 서울교당)이 자리잡게 된다.
이리하여 원기 18년부터 원기 31년2월까지 12년간의 돈암동 교화는 잊혀져가는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이로 말마암아  돈암동 삼선동에 거주하는 교도들은 서울교당이 너무 멀어 예회를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이에 대종사 당대 친견 제자들이 발의를 해서 돈암동에 교당설립에 대한 싹이 트기 시작되었다. 이동진화 교무의 염원과 대종사 당대 경성지부 회원들의 간곡한 발원으로 원기 51년부터 출장법회가 시작되었다.
원기 51년 4월 16일 서울교당 유성일 교무와 성성원, 박영주, 한기삼옥, 신대영, 홍법명화등의 노력으로 기금을 모으는 한편  4월 16일 한기삼옥댁에서 구타원 이공주 교무를 모시고 첫법회를 했다. 그후 8개월뒤인 원기 51년 돈암동 산 11-4번지에 대지 150평 목조건물 2동 산동네 판자집을 매입하여 축대를 쌓고 교당면모를 갖추어 출장법회를 계속 보았다.
원기 52년 6월 16일 초대 이경재 교무가 부임하고 돈암선교소 신성 봉불식을 하였다. 그 후 교당이 산동네에 위치하여 산동네 교당의 불편함과 물난리로 교당이 허물어지는 등 교당의 위치적 문제로 교당옮기기 운동을 벌인지 만 1년만에 한옥을 매입하여 원기 54년 11월 15일에 이사하였다. 구 교당자리는 교도에게 전세를 놓았다. 원기 57년 6월 19일 교당 신축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원기 59년 봄에 착공하기로했다.
원기 60년 9월에 착공하여 11월 20일 봉불낙성 3층 슬라브 연 94평 현대식 교당이 지어졌다.
원기 79년 1월 30일 교당 건축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신축에 대한 회의를 거쳐 원기 79년 4월 11일 건축허가를 받고 원기 80년 4월 9일 봉불 낙성식을 거행했다. 원기 80년 어린이집을 개원하였고 원기 89년에는 어린이집 교사교리공부를 시작했다. 원기 82년 돈암교당 청년 창립 20주년 기념법회가 있었다. 원기 85년 양주 연원교당 신축 기공식을 하고 원기 86년 양주교당 봉불식을 거행했다. 원기 87년 돈암교당 여성회를 창립했다. 원기 94년에는 대각개교절 은혜의 생수 공양을 시작했고  원기 97년에는 교도 자녀 장학금 전달을 했다. 원기 98년부터는 은혜의 쌀나누기를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원기 93년부터는  마음 공부 법잔치를 열어왔다. 원기 100년에는 돈암교당 역대 청년회출신 모임 및 법회를 열었고 원기 108년 현재는 교당 리모델링을 준비하느라 임시거처로 옮겨 준비를 하고 있다. 
교당 역대 12대 교무인 봉타원 이심진 교무와 돈암교당 학생회 출신 현타원 김정현 교도회장은 교화 공간의 협소로 인해 교화의 어려움이 있어 1층 어린이집 공간을 “다목적실과 식당을 비롯 갤러리, 동아리 활동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지역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지역주민과 함께 교법을 나눌 꿈을 꾸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센터와 협치로 리모델링된 공간에 함께 문화교실을 운영하고 지역민을 위한 선방과 성신여대생들을 위한 명상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라며 교화 공간이 없어서 아쉬웠던 교화갈증이 교당 리모델링을 통해 해소되어 예전 돈암동의 역사가 다시 부활하길 기대해 본다.      


6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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