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17) 3 주산 송도성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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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17) 3 주산 송도성 종사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7.12 13:50
  • 호수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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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헌심영부 헌신사계獻心靈父 許身斯界 

주산종사는 1907년 12월 23일, 경북 성주군 초천면 소성동에서 부친 구산 송벽조 대희사와 모친 준타원 이운외 대희사의 2남 1녀 가운데 차남으로 탄생했다. 
유가의 명문에서 성장한 주산종사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총명정직하고 정의감이 투철하였다. 4살 때부터 조부 송훈동(본명 성흠) 선생으로부터 유학을 익혔는데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치는 총명이 있어 신동으로 불리었다. 그의 종친인 당시 영남의 거유 공산 송준필 선생도 일찍이 문리를 얻은 소년 주산을 보고 장차 그 대성을 예언한 바 있다. 
가족이 모든 정산종사의 연원으로 원기 4년 8월 영광으로 이사함에 따라 주산종사는 자연 대종사의 법하에 귀의하게 되었다. 주산종사가 대종사를 처음 뵙기는 13살 때였다. 
한번 뵙고 즉석에서 제자 되기를 청하였고, 이를 기특히 여긴 대종사님께서 “네가 어떻게 그런 마음이 났느냐?” 묻자 어린 주산은 “부심자(夫心者)는 지광지대물(至廣至大物)이니 수련정신(修練精神)하여 확충기지대지심이이(擴充其至大之心而耳)입니다”고 답하였다. 이에 대종사께서 기뻐하며 “네가 도의 성품을 알았구나, 앞으로 도성(道性)이라 이름 하거라”하며 법명을 지어 주셨다. 
주산종사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 살기는 영광으로 이사 와서 반년쯤 지난 14살 때였다. “도성이 하고 길선이를 우리 한번 바꿔서 가르쳐 봅시다”하고 대종사와 구산 대희사 사이에 이야기가 되었다. 이리하여 대종사의 장녀 청타원 박길선 종사는 남부(전남 영광군 묘량면 신천리)에 와 살게 되었고, 주산종사는 길룡리(영산성지)에 가 살게 되었다. 이들 둘은 그 후 원기 14년, 주산종사 23세, 청타원종사 21세시에 어른들의 뜻을 따라 결혼하니 그 인연의 지중함과 대종사의 제자 송도성에 대한 깊은 사랑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특히 대종사께서 총애하는 제자 주산과 딸 길선의 결혼을 당하여 신정예법에 준하여 검박함의 효시를 보였던 점은 성인다움의 또 한 가지 사표라 생각된다. 
주산종사는 원기 7년 16살 때 부안 변산에서 교법을 초안하며 은거하는 대종사께 「헌심영부 허신사계 상수법륜 영전불휴(獻心靈父 許身斯界 常隨法輪 永轉不休)」(마음은 스승님께 드리고 몸은 세계에 바쳐서 일원의 법륜을 힘껏 굴려 영겁토록 쉬지않게 하리라)의 「출가시」를 바치고 전무출신을 단행하였다. 
석두암에서 친형인 정산종사를 비롯, 여섯 동지와 더불어 대종사를 뵙고, 낮에는 산전을 개척하여 생활의 근거를 마련하고 밤이 되면 법석에 참석하여 청법낙도하였다. 법설 내용은 대개 관심입정과 견성성불하는 방법을 설하였는데 주산종사는 이 법설을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7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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