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안녕이라 하지 않을게요
상태바
스승님, 안녕이라 하지 않을게요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7.19 14:33
  • 호수 13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향허 일산 교당 교무

 

원기65년 9월 12일이었지요. 
가을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던 날, 제가 필동에 있는 중구교당 문을 빼꼼 열었을 때 스승님은 텃밭에 물을 주고 계셨어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어찌 왔노?” 하신 것이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 만남이 영생의 만남이 될지도 몰랐어요. 
그 후 스승님이 “함 보자” 하셔서 교무님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깔끔했던 방 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우리 향허는 부처님과 인연이 깊으니 출가를 하라.”고 권유하신 것이 늘 머리 속을 맴돌았어요. 
전역 후 출가를 서원했을 때 “참 잘했다. 그럴 줄 알았다”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가장 인상이 남는 기억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기억은 원불교학과에 편입한 첫 학기에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았을 때와 설교할 때 지었던 흐뭇한 표정입니다. 
그 세 가지를 빼고는 스승님의 머리를 뜨겁게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공부길을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도, 부임해 적응을 잘 못할 때도 스승님은 한결같이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실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은모 결연을 해주는데 은모 결연을 해주지 않아 서운한 마음이 있었어요. 
아들 뻘인 저의 은모가 되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어 그 때부터 제 마음에 스승님은 은모요 영모가 되셨습니다.
 우리 정토에게는 어머니로, 아이들에게는 할머니로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주셨지요. 그나마 퇴임하시고 수도원에 오시고 난 후 매주 토요일이면 스승님을 모시고 드라이브 하고 함께 맛있게 식사 대접해드렸어요. 
10여년간 스승님과 차 안에서 동요부터 성가, 가곡까지 함께 부르던 그때가 제가 해드린 유일한 효도였습니다.
 보현보살의 자비와 문수보살의 지혜를 갖추신 우리 스승님, 말년 병고에 계실 때에도 기억은 흐릿해도 그 따뜻함은 여전하셨지요.
원기106년 7월12일 왜소해지신 스승님을 안아드리면서 나도 모르게 “어머니, 참 고마웠어요. 다시 만날 줄 믿사오니 안녕이라 말은 하지 않을게요” 그렇게 배웅하듯 보내드리고 올해 시신기증 한 유해를 영모전에 모시고 지난 12일 3주기 열반기념제를 모셨습니다. 
 제겐 스승님이자 어머님이셨던 우리 창타원 김보현 대봉도님! 
잘 살다 잘 가셨으니 다시 좋은 인연으로 만나 이 공부 이 사업 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무 것도 바꾸지 않겠어요. 모든 것이 그냥 그대로(윤종신 배웅)’  

 

 

 

7월 21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