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19) 3.주산 송도성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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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19) 3.주산 송도성 종사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8.09 11:40
  • 호수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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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순직! 불멸의 청년상


주산종사는 원기 28년 6월 1일 대종사의 열반을 당하여 비통한 가운데 수위단 중앙에 피선되어 친형인 정산종사를 보필하였다. 
법신불 사은전에 자아를 완성하고 사회를 개조할 힘과 빛과 열을 달라고 애타게 매달리는 시(詩)  「오, 사은이시여」를 원기 21년에 『회보』 24호에 발표했던 주산종사는 원기 30년 총무부장에 부임, 민족의 숙원이던 8·15해방을 맞자 전재민구호사업회를 발기해 경성·이리·전주·부산 등지에서 일본·만주·중국 등 해외에서 귀환하는 <전재동포구호사업>을 전개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한국사회에 원불교를 알리는데 앞장섰고, 고아원인 <보화원>을 설립, 교단 자선사업의 효시를 이루었다. 
교단의 탁월한 지도자요 지칠 줄 모르는 불멸의 청년상이었던 주산종사는 <전재동포구호사업>에 몰두하던 중 이재민의 전염병 발진티푸스에 감염된 줄도 모르고, 학림 설립문제, 보화원 운영문제, 구호사업 철수문제, 총부 서울출장소 설치 문제 등 교단의 중대 현안을 의논하기 위해 트럭 편으로 총부에 내려오다 건강이 악화, 원기 31년(1946) 3월 27일, 40세를 일기로 대종사 전법게송을 암송하면서 거연히 열반했다. 
작은 키에 위용과 정열이 넘치는 얼굴,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주산종사는 각 종교의 경서에 통달하는 지혜와 신구학문을 이해하는 지식에 이르기까지 걸리고 막히는 바가 없었고, 신문·잡지·문학서적을 보고 아는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붓글씨와 달마상 그리기에 일가를 이루고 문장에도 능하여 초기교단 간행물에 많은 글을 남겼다. 
진보주의자로서 패기에 넘친 지도자요,  자신 수앵에 철저했던 주산종사는 특히 청년지도와 후진양성에 열과 성을 다했으며 원기 31년 4월 그의 유지를 받들어 발족된 <금강청년단>은 뒷날 <원불교청년회>의 모체가 되었다. 
교단창립을 위해 심신을 다 바쳐 불태웠던 주산종사는 원기 39년 4월 수위단회에서 출가위로 추존되었으며 원기 42년 종사의 법훈을 추서 받았다. 원기 76년 소태산대종사 탄생 백주년을 기해 교단은 주산종사의 법위를 정식 대각여래위로 추존했다. 
출전 : 송인걸저 <대종경 속의 사람들> 

 

8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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