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는 부처되는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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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는 부처되는 첫 걸음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8.17 19:27
  • 호수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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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오인원 강남지구장

 

‘경계’라는 말은 원불교에서 참 흔한 말이다. 그리고 교도님들의 마인드에 경계라는 단어는 무언가 좋지 않은 듯한 느낌의 말이기도 하다. 마치 경계가 나타나면 온전했던 내가 흔들려서 판단도 흐려지고 감정도 흔들리고 취사도 엉뚱하게 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대종사님께서 일상 수행의 요법에서 [심지는 요란함도 어리석음도 그름도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라 하신 말씀을 따라 보면 분명 경계가 나를 요란하게도 어리석게도 그르게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계란 참으로 묘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내가 부처님처럼 가만히 있는데 그냥 경계가 오기만 하면 나를 흔들어서 업을 짓고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도 어리석음도 그름도 없다. 그러나 중생의 무명이 세상 속에서 아상을 짓고 분별심을 일으킴으로 갖가지 물이 들고 욕심을 내서 온갖 업을 짓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저마다의 색깔로 감정과 업력들이 긴 세월에 철석같이 굳어 중생심을 지었으니 이 마음이 경계를 만나면 요란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내게 있어 이 업심들이 경계가 없을 때는 흔적 없이 숨어 있지만, 경계를 만나면 딱 거기에 맞는 중생심이 어김없이 나타나서 때로는 요란함이 때로는 어리석음이 또 때로는 그름이 난다. 만약 우리에게 경계가 없다면 나의 중생심을 발견할 수가 없고 그러면 내가 나의 업심을 알지 못하므로 그 업심을 닦을 수도 없으니 우리는 복혜의 주인공이 될 수도 없고 영원히 부처가 될 수도 없다. 
내가 남을 속이고 나조차 속일 수 있으나 경계는 절대로 속일 수 없다. 경계야말로 한없이 깊은 곳에 티끌같이 숨어 있는 중생심도 찾아서 기어이 끄집어내고 숨은 성격과 기질을 다 불러 일으켜 확인하게 한다.
무심을 얻을 때까지 단련시켜 성불할 때까지 끝까지 인도해 주시고 반드시 부처가 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며 조금도 소홀히 여기거나 싫어할 대상이 아니다. 
경계! 나를 부처로 이끄시는 참으로 알뜰한 스승님이시다. 

 

 

8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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