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악연은 말로도 빚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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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악연은 말로도 빚어진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8.30 19:40
  • 호수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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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은(인천교당 교도)

소설은 현실을 모방한 세계이므로 문학은 픽션이다. 소설이 선택한 사실은 작가에 의해 재해석의 과정과 주관적 평가를 통해서 윤색되고 편집되어 독자와 조우한다. 이러한 점은 글이 아닌 시각적 장면과 연기로 표현된다는 측면만 제외하면 원작의 각색과 감독의 연출로 꾸며지는 영상 예술도 마찬가지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주인공을 비롯하여 등장 인물이 그렇고 사건을 비롯하여 그 사건을 촉발시키는 갈등 요소가 그렇다. 동일한 사안이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전혀 상반된 의미로 해석되어 재구성되듯이 문학도 동일한 사태가 작가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취지로 해석되어 형상화된다. 예컨대 태종이나 광해군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문학에서도 그 평가가 엇갈린다. 그래서 세조와 단종을 바라보는 춘원과 춘사(김동인)의 입장은 ‘단종애사’와 ‘대수양’이라는 작품의 제목에서부터도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문학적 진실은 작품내에서 작가가 지향하는 주관적 가치다. 따라서 작가는 평범을 거부하고 일상을 외면한 채 자신의 관점과 이념에 근거하여 자극적인 노선에 따라 사건을 펼치고 자의적인 방식에 따라 등장 인물들을 재창조한다. 물론 역사적 인물은 독자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흥미를 부추기기 위해 항상 비정상적으로 가공된다. 여기에 악마성이 캐릭터의 비정상성과 결탁하는 순간 그 광경은 독자나 관객 또는 시청자에게 더 없는 극적 호기심을 제공하고 감각적 재미를 선사한다. 따라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보이는 등장 인물들의 각종 부도덕한 행태는 소비자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대종사께서는 이 점을 경계하셨다. 문인들이 소설을 쓸 때에 일반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소인이나 악당의 심리와 행동을 지나치게 부풀려 극악무도한 악인으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또한 좋지 못한 인연의 근본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소설뿐인가? 우리도 종종 예사로 남을 험담하고 흉보며 미운 사람에 대하여 독설로 경색된 감정의 날을 세우곤 하는데 독기는 증오의 대상을 공격하는 심리적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그 전에 자기의 온전한 인격을 훼손하는 자발적 독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적을 향하여 내뱉는 언사는 그대로 반조되어 자신의 숨통을 조이며 원수를 향하여 퍼붓는 거친 혐오는 그대로 반사되어 자신의 영혼을 욕보인다. 게다가 상대가 그 적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온갖 욕설과 악담을 퍼붓고 비난을 일삼으며 모욕적 언동을 보였던 악꼬사까 바라드와자가 결국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붓다의 제자가 되어 아라한이 된 것도 이 이치에 따른 것이다. 남에게 베푸는 선의는 받는 당사자에게 먼저 돌아가지만 남에게 가하는 거칠고 과장된 험언은 그 화살이 본인에게 먼저 미친다.  
 몸에 입은 상처는 물리적인 치료로 치유되고 시간이 흘러가면 회복되지만 말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회복도 더디지만 상흔도 깊을 뿐 아니라 덧나거나 재발을 반복하기도 한다. 물론 공중에 던지는 재앙의 말도 허공에 그 흔적을 남기고 불행의 씨앗이 되기 십상이다. 그대들은 옛 사람의 역사를 말할 때에나 지금 사람의 시비를 말할 때에 실지보다 과장하여 말하지 말도록 주의하여 악연을 피하라는 대종사의 가르침은 입이 재화(災禍)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말씀에 다름 아니다.                       


9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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