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山의 마음일기/ 5 . 나는  부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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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山의 마음일기/ 5 . 나는  부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09.06 11:32
  • 호수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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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 신치중 강남 교당 교도

 

며칠 전에 부산의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여직원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녀는 우리 가족들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그녀가 농협에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 가족이 1971년부터 1976년까지 부산의 동상동에서 살았던 전셋집 주인의 딸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아래였기 때문에 나보다는 동생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녀의 집에서 세를 살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고1이었던 1970년도에 15만원으로 시작한 동상동의 셋방살이가 고3이었던 그녀의 집에서는 보증금 2만원에 월세를 줘야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돈놀이 하는 사람으로부터 돈 1만원을 40일간 빌려 쓰고 이자 4천원을 갚아야 했는데 내가 온갖 사정을 해서 이자 3천원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그게 당시 통용되었던 소위 급전이라는 것으로 연 이자율 365%짜리였다. 
그녀의 집에서 살던 셋집은 부엌과 단칸방으로 할머니, 어머니, 동생 둘, 나까지 5명이 자기에는 너무 좁은 방이었다. 
방 한 칸에 살림살이가 모두 들어있어서 5명 중 2명은 옆으로 누워서 자야했다. 미닫이문은 잘 열리지도 않아서 얼마나 짜증났는지 몰랐다. 
때로는 아침을 라면으로 때우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고, 버스 차비가 없어서 휴일 날은 시내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삶의 의미도 없었고, 눈을 감으면 높은 절벽에서 아래로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일부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원수 같아 보였던 결코 뒤돌아보기 싫은 시기였다. 
그 때 하나의 돌파구가 고2 때의 원불교 서면교당 이효원 부교무님이었다. 효원 부교무님은 나의 사정을 잘 아셔서 다른 학생들 모르게 라면도 끓여 주셨고, 돈 400원을 주시면서 서면시장에서 튀김닭을 사오라고 해서 교당의 다락방에서 혼자 먹도록 하시기도 했다. 내가 먹기를 주저하면 계문이나 미안함에 구애되면 큰 인물이 못된다고 하시면서 나중에 커서 큰일 많이 하라고 하셨다. 
그 분은 지금까지 37년 동안 내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고, 용기를 북돋아 주신 고마운 분이었다. 아무리 침체된 기분일 때라도 판타원 이효원 교감님과 통화를 하고 나면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당당하고 힘이 생겼다. 
그 이후 재물에 대한 욕심도 많았고, 직장에서 승진에 대한 욕심도 남달라서 매사에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면 나는 부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5월의 하늘이 비록 맑지만 언제 장마가 오고 태풍이 올지 모른다.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부자가 된 기분이다. 
비록 넓지 않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더 이상 큰 아파트가 부럽지 않고, 쥐고 있는 현금이 별로 없어도 더 이상의 큰돈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자신의 능력을 감안하면 재산을 모아도 그 규모가 눈에 보이고, 직장에서 올라갈 자리도 눈에 보인다. 더 이상 모으고 더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자리가 5월의 청명한 하늘처럼 맑고 가볍다.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08.5.9.)

 

9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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