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극복할 통합 사관을 수립하자
홍범도 장군 흉상을 옮기려고 한단다.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사변과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을 내세워 흉상을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전광역시는 한 수 더 떠 유성구의 ‘홍범도로’를 없애기로 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21세기에, 미래를 향해 국력을 집중해도 힘든 시기에 우리는 해묵은, 이제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생각한 이데올로기 논쟁을 펼치고 있다. 역사의식의 부재이고, 역사의 퇴보이다.
이데올로기 논쟁은 역사의식의 문제와 직결된다. 보수진영의 역사의식 속에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은 임시정부에 있지 않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있다. 이를 뉴라이트 사관이라 한다.
우리 헌법 전문을 보면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하고 있으므로 국군의 정통성은 한말 의병, 독립군, 광복군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를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면 안 된다. 민족의 독립이라는 과제를 실현하는 데 이데올로기는 그 도구였을 뿐이다.
물론 뉴라이트 사관에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독립투사를 제외한다면, 뉴라이트에서 인정하는 친일 분자가 다시 권력을 잡은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진보 진영의 역사의식도 편협하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해전사)에 바탕으로 해 미국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도 문제이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를 도왔다고 한 편에서 접근하는 우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5일 6개월의 준비 끝에 ‘진영논리 극복과 상생 사회 실현을 위한 1천인 선언’이 열렸다. 아이러니하게 선언 이후 오히려 진영논리가 더 심해지고 있다. 특히 홍범도 흉상 이전 건이 화약고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다. 그래서 이 두 역사관을 통합할 새로운 역사관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왜 내 말만 옳고 네 말은 다르다고 하는가?
일단 멈추자. 긴 숨 내쉬고, 상대의 눈을 바라보자. 한쪽에 치우치지 말자. 한 편에 착하지 말고 전체를 보는 눈을 갖자.
온전한 생각으로 보면 내 말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자. 상대의 말이 옳을 수도 있음을 수용하자. 그러면 거기서 공통분모가 생길 것이고 그래야 타협과 합의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이 과정을 잃어버렸다. 무조건 목소리가 큰 놈이 이기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끝장을 보려 한다.
끝장(場)이 어디 있는가? 오늘은 끝장이지만 내일에서 보면 늘 첫 장(場)이다. 처음 본다는 마음으로 보면 아무 문제 없다.
분별없는 자성 자리에서 분별을 잘하자.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