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에서 온 편지] 자연의 여백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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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에서 온 편지] 자연의 여백은 아름답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0.18 16:05
  • 호수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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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고, 비우고, 놓아버리는 자연과 하나되어 느끼는 큰 자유

익타원 유성신 오덕훈련원장

 

녹음으로 생명력 넘치던 축령산 자락이 정상으로부터 차근히 물을 들이며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 내려오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낙엽들이 제법 울긋 불긋 노랗게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멈추지 않고 사계절이 변화하는 자연의 질서에 머무는 내 눈길은 늘 새롭다. 이제 조석으로 부는 찬바람은 예사롭지 않게 시리다. 훈련원에서 주관하는 한해의 훈련을 거의 갈무리하여 가며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게 한다. 
공을 위해 정신 육신 물질로 희사하여 공들여 가꾸고 다듬어진 공간은 누군가가 머무르며 쉬어 가는 행복과 기쁨의 장소가 된다.
미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구석진 도량에 우거진 전지작업이 이루어진다. 바위틈 사이를 뒤덮어버린 나무들은 오래 손길이 머물러 그 형체를 다듬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는 떨어져야 바람이 소통되고 햇빛이 들어와 성장하기에도 좋은 조건이 된다.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얼굴의 존재를 드러내며 선명해진다. 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바위는 마치 흰 이를 드러내 웃는 것과도 같이 조화를 이루어 그 여백이 아름답다. 
잘 정돈되어 비어 있는 공간은 여유가 있고 마음이 평온하다.  
내가 머무는 처소에도 물건들을 최소한의 것으로 줄이고 정리하여 새것과 좋은 것은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누어 보자. 내 욕심을 덜어내는 일은 정갈함의 향내를 풍기고 다른 사람에게 흐뭇함을 주는 자리이타가 된다.  
가을은 비우는 계절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인연이 다하면 그곳에 머물렀다가 언젠가는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녹음으로 꽉 채운 공간들은 이제 씨앗과 열매만을 남기고 형상 없는 곳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가 때로는 책임을 다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때로는 소유하고 채우기 위하여 열심히 달려온 봄과 여름 같은 날들이었다.  
 가을!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떨어지는 낙엽을 밟고 파란 하늘 올려다 보며 맑은 정기가 흐르는 산천을 따라 부드러운 호흡과 함께 뚜벅 뚜벅 산행길을 오르자. 생각을 내려 놓고, 한 걸음 한 걸음 한 호흡 한 호흡 마음챙김속에 마음이 저절로 풍요로워지고 안온하여 평정심이 찾아온다. 이는 곧 생각의 잡철들을 녹아내리게 하고 본래의 고요함을 찾아가는 선禪이 된다.  이렇게 마음에 빈 여백을 만들면, 무명과 어둠에 가리워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들이 드러난다. 보이고 들리고 알아차리게 된다. 
가득 채우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으로써 만족하고 즐거움에 머무는 것은 반드시 허망함이 있기 마련이다.  
 산천초목의 대자연의 여백은 아쉬움이며 기다림이며 또 다른 시작이다. 
내려놓고, 비우고, 놓아버리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지친 심신을 조율하자.  우리에게 더 큰 자유를 만끽하게 하고 더 높고 더 넓은 가치를 향하게 하는 큰 선물이 그곳에 있다.  

 

 

10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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