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의 마음일기 10. 폭우 속을 달린 가장 잘 뛴 동아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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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의 마음일기 10. 폭우 속을 달린 가장 잘 뛴 동아마라톤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0.18 16:37
  • 호수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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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2001년 10월부터 2004년 3월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여섯 번 뛰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잘 달린 때가 2003년 3월 동아마라톤이었다. 동아마라톤 코스는 서울 광화문에서 남대문, 잠실대교, 천호사거리, 길동사거리를 지나 잠실운동장까지 42.195km였다. 
그에 비해 가장 잘못 뛴 것은 2002년 동아마라톤으로 겨울 내내 별다른 훈련 없이 열심히 달리면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임했다가 큰 고생을 했었다. 더구나 초반 오버 페이스로 20km도 못가서 현기증이 나고 졸음이 오면서 왜 50이 다 된 나이에 이렇게 고행을 해야 하는지 계속 되물었다. 
다시는 풀코스를 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날의 기록은 4시간 37분으로 매우 저조했었다. 그래서 그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매일 새벽 3km를 달리고 매주 일요일은 20km를 달리고 30km도 달렸다. 직장에 일찍 출근함은 물론 일요일도 출근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가장 잘 뛴 2003년 3월 16일 오전 8시 정각 축포와 함께 8천여 명의 마라토너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광화문 네거리의 넓은 길을 달리는 기분, 우리의 모습이 동아일보 사옥에 설치된 대형 멀티비젼에 비쳤고, 하늘에는 저공으로 비행하는 헬기의 굉음으로 마라토너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더욱 힘차게 만들었다.
남대문을 지나 한참을 달리니 반환 지점을 돌아오는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초청받은 프로 선수들이 몇 개 팀으로 무리지어 힘차게 지나갔다. 10km 정도를 달렸는데 며칠 전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던 왼쪽 무릎 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봄비가 내리더니 나중에는 폭우로 변했다. 안경은 빗물로 얼룩졌지만 작년에 어렵게 지나갔던 군자교도 가볍게 지나가고 작년에 황사와 맞바람으로 힘들게 지나갔던 잠실대교도 즐거운 마음으로 지날 수 있었다.
폭우로 아스팔트길의 물이 고여 있는 지면을 피해서 달리려고 했지만 신발 속이 젖어서 나중에는 질퍽거리기 시작했다. 잠실대교를 지나 천호사거리로 향하는 직선코스가 작년에는 끝없어 보였지만 이번에는 비만 내리지 않았다면 더 가벼운 마음으로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23km 정도 달렸을 때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가 번갈아가면서 근육이 뭉치기 시작했다. 조금만 힘을 줘서 달리려고 하면 근육에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초반부터 시작된 무릎 관절의 통증은 없어지고 근육통으로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을 적게 주면서 부드럽게 달리려고 노력했다. 30km 지점에서 초코파이를 하나 집어서 반쪽을 먹고 바나나도 한 쪽을 집어 먹었다. 41km 지점을 지나 잠실 운동장의 거대한 지붕이 보일 때는 오늘도 수고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역시 4시간 벽은 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무릎은 통증으로 움직일 수도 없어서 운동화에 부착된 스피드 칩을 빼기도 힘들었다. 50의 나이로 네 번째 도전한 기록이 4시간 5분으로 풀코스 여섯 번 중 가장 좋은 기록이었다. 
나는 지난 2001년 4월 일산호수마라톤에서 21km 하프 마라톤을 처음 뛴  후 그해 가을에 문화일보 통일마라톤을 시작해서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중앙일보 서울마라톤 등 풀코스를 여섯 번을 뛴 것이었다. 마라톤을 하면서 느낀 점은 최소한 6개월 전부터 매일 몇 km를 뛰어야 하고, 초반에 욕심이 앞서서 오버페이스를 하면 풀코스를 완주조차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결국 마라톤이 사전에 충분한 훈련 없이 욕심만 앞서서는 좋은 기록을 기대할 수 없는 게 대충 살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우리 인생과 흡사함은 새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2004.3.20)

 

 

10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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