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의 마음일기] 마음일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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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의 마음일기] 마음일기11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0.25 19:57
  • 호수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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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할 물품을 정리하면서 

 

아름다운 가게에서 판매할 물품을 기증하기 위해 책장과 서랍 속을 뒤져보면서 온 집안을 둘러봤다. 선뜻 손에 잡히는 게 국전 작가의 동양화 액자, 국전 작가와 지방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인 합죽선과 도자기, 2002 월드컵 공식 축구공 등이었다. 나의 손에 들어 올 당시에는 여러 차례 고마워했고, 또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러나 그 물품들이 언제부턴가 조용히 자신의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보관되어 있어야 했다.  
1984년도 거제도에서 살 때 처음으로 동양란에 대해 공부하면서 동양란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거제도에서 서울로 이사할 때는 11월의 찬바람에 얼까봐 노심초사 했고 좁은 방의 냉장고 위에까지 올려놓아야 할 정도로 궁색하기도 했었다. 비싼 혜란류를 정상 가격으로 구입할 수 없어서 싹을 잘라낸 퇴촉을 촉당 가격의 반값으로 샀고, 상여금을 받을 때마다 아내 몰래 조금씩 사서 모았었다. 그 당시 난에 대한 애착심은 정말 대단했었다. 난 한 분을 어느 분에게 기증하고는 그분 댁을 방문할 때마다 그 난을 먼저 보게 되는 일종의 상(相)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애착심은 출퇴근할 때마다 먼저 난에게 인사를 했고, 난이 많아서 3평짜리 난실을 만들고 나니 여름이나 겨울에는 난의 보관이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당초 난에 대한 사랑이 집착심으로 변했고 그 집착심은 점점 부담감으로 발전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강남구청으로부터 항공촬영 결과 무허가 건축물이니 철거하라는 통보를 받고는 난실을 철거해야 했다. 그렇게 소중했던 난들을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대하던 어느 여름날 그 많던 난들이 병들기 시작해서 두 달이 채 안 되어서 거의 다 죽어버렸다. 아마 나와 난들의 기운이 서로 통한 것 같았다.  
그 이후에는 직장의 인사이동으로 예쁜 꽃이 핀 보세란을 선물 받을 때마다 그 난들을 이삼일 정도 보관했다가 난을 좋아하는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꽃이 다 시든 후에 직원들에게 주는 것보다 꽃이 갓 피어난 상태로 주는 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훨씬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박청수 교무님의 ‘누구에게 뭔가를 줄 때는 온기가 있을 때 주는 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의미가 있고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는 설교 말씀을 잊지 않았다. 
거제도에서 살았던 1985년 어느날 일붕 서경보 스님이 거제도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스님을 찾아가서 여러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서 ‘眞如妙體’라는 글을 한 점 받았다. 그 이후 그 작품을 가보처럼 모시고 다녔다. 그랬던 작품을 25년이 넘도록 보관해 왔는데 어느날 보니 화선지는 낡고 변색되어 더 이상 보관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볼품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식주 생활에 필요한 돈이나 최소한의 가재도구만 있으면 그 외의 웬만한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차라리 그런 정성을 주변의 사람에게 투자하고 자신의 마음에 공을 들이는 게 더 현명할 것 같다. 
결국 좋은 취미 생활도 과하면 부담이 되고, 사소한 애착심도 버리고나면 마음을 자유자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날 그토록 애지중지 했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앞으로는 지나친 욕심으로 어리석은 행을 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주변을 넓게 보고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여유와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 (2008.11.10) 

 

 

10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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