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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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29)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0.25 20:04
  • 호수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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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년기(출가전반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성장기(成長期)를 유년부터 10대까지로 하고, 청년기를 20대로 구분하였으나 유묵은 각1점씩 문헌에만 남아 있다. 소재가 드러나지 않아서 실물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도판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1) 출가서원송-원기 7년(1922, 16세 겨울)이 유묵은 1922년 겨울 송도성이 영광에서 봉래정사로 찾아와 소태산 앞에서 「헌심영부 허신세계, 상수법륜 영전불휴」 라는 출가 서원송을 올린다. 이를 16세 소년이 썼다고 보기에는 참으로 놀랍다. 예로부터 소년문장은 있어도 소년명필은 없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무색할 정도다.
서예사에서 어린 나이에 득필을 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예를 들면, 주산종사와 비슷한 시대의 정읍 태인 출신 몽연 김진민(1912~1991)이란 소녀가 있다. 몽연이 쓴 영광<불갑사>의 현액과 김제 금산사의 <대자보전> 등지에 걸려있는데 모두 10대, 20대 작이다.  
그러나 몽연의 경우 당시 저명한 성당 김돈희(1871~1937)로 부터 직접 사사 받았다. 따라서 특별한 스승이 없이 필법을 얻은 주산종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무리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있다하였으나 이처럼 문장 내용이나 운필의 흐름에서 뛰어난 필재를 보인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서작의 흐름과 품격이 고도로 숙련된 행초서로 한 점 한 획도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의 작품이다. 
어린 나이에 득필하기 어려운 까닭은 서예는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국 한나라 때 채옹(132~192)은, “서(書)란 마음을 푸는 것이다. 글씨는 쓰려고 할 때에는 먼저 가슴속에 있는 생각을 풀어놓고 감정가는 대로 천성에 의지한 뒤에 써야 한다”라고 하여 서예를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는 『금강경』에 나오는 ‘응하여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  와도 같은 맥락이다. 또 청(淸)의 유희재(1813~1881)는 『서개(書槪)』에서, “서(書)는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이 배운 바를 그대로 반영하고, 그 사람의 타고난 재능을 그대로 반영하며, 그 사람의 성정과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결론지어 말한다면 서(書)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반영하는 것일 따름이다” 라고 하여 사진(영정)을 흠모하여 모시듯 서예작품 또한 상대의 인격적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자산야’. ‘서여기인’은 글씨문화에서 매우 비중있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 좋은 예로 안중근(1879~1910)의사의 작품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을 들 수 있다. 안중근의사는 전문적인 서예가는 아니지만 역대 여느 서예가의 작품보다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 그것은 인격이나 인품이 그 작품의 품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산종사의 이 글씨는 비록 10대에 쓴 글씨이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따라 조숙한 서품이 나올 수 있음을 증명한 좋은 사례이다.  

 

10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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