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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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간다는 것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1.01 14:50
  • 호수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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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타원 안혜연 금천교당 교무

 

 찬바람이 느껴지면 한해가 서서히 물러날 준비를 하는거다. 새로운 해가 오고 있는거다. 삶을 계절에 비유해 본다면 지금 내 인생의 계절이 이때쯤일 듯 싶다. 정신이 번쩍 든다. 서서히 내 삶을 갈무리 할 때가 되어 간다는 거다.  
어떤 가수는 이렇게 노래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언제부턴가 이 노랫말이 참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익어가기가 쉽지 않다. 
하루 종일 벅차게 일해도 자고 일어나면 거뜬하던 몸이었다. 이젠, 좀 많이 움직였다 싶으면 몸의 여운이 며칠 간다. 
청력이 약해져, 때론 누군가의 말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아, 남모르게 마음공부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이야 좀 적응이 되었지만 참 빨리도 찾아온 난청은 많이 당혹스러웠었다. 
골다공증이 염려되어 걷기에 정성을 들인다. 어느 날 열심히 걷다가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건강을 챙긴다는데, 난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다가 훌훌 떠나면 되지, 뭣 때문에 이렇게 건강을 챙기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스로 답을 내렸다. 현직에 종사할 때 까지는, 공중사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되고, 주변 인연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아야 되니 건강을 챙기는 것으로…. 
건강관련 정보에 관심이 많아지고, 이런 저런 나의 상태를 보면, 이건 익어가는 것이 아닌 듯 하다. 난 익어가고 싶다고 아무리 우겨봐도 생로병사 이치 따라 늙어가는것이다.  늙어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작사가에게 묻고 싶어진다. “어떤 걸 익어간다고 말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일부러 작사가를 찾아 답을 구하기는 어려울 듯 하니, 내 스스로 답을 찾아본다. 
과일이 익고, 곡식이 익고, 김치가 익고…, 익었다는 것은 은혜를 나툴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잘 익은 과일, 알알이 영근 곡식, 잘 익은 갖가지 김치등…, 그뿐 아니다. 누군가의 손에 익은 기술로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물건들, 타고난 재능 위에 노력으로 익힌 실력으로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꾸며주는 문화 예술이나 스포츠는 또 어떤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형 무형의 익은 것들 없이 우리가 살 수 있겠는가 먼저 마땅히 생각해 보니 결론은 ‘살수 없겠다’ 였다. 내 나름 답을 찾았다.
‘우리 몸과 마음이 은혜를 나툴 수 있는쪽으로 가고 있다면 익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만물을 익게 하는 사은님의 은혜가 날 비켜 가진 않을터이니 나 또한 익을수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하니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참 좋다. 
나는 어떻게 익어갈까. 말갛게 익어서 누군가의 앞에 놓여, 엄마를 생각나게 하고 잔잔한 그리움과 행복을 주는 홍시만큼이라도 익을 수 있다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11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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