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의 마음일기 13.해외여행 중에 맞은 날벼락
상태바
중산의 마음일기 13.해외여행 중에 맞은 날벼락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1.08 13:22
  • 호수 13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산 신치중
강남교당 교도

2014년 3월 어느날 아내와 함께 남미 배낭여행을 가서 황당한 날벼락을 맞은 적이 있었다. 여행을 떠난 지 19일째 되던 날,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서 어렵게 한인식당을 찾아서 우리 부부는 된장찌개와 육개장을 주문했다. 그동안 볼리비아 사막을 지나면서 고산증에다, 우유니 소금사막을 지나는 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내의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특히 빵을 잘 먹지 못하는 아내가 해외에서 배낭여행을 하는 게 처음부터 고생이었다.
​그런데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김치찌개를 먹은 후 9일만에 육개장과 된장찌개를 본 아내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걱정스러웠다. 저렇게 성급하게 먹다가 체하거나 과식해서 설사라도 하면 어떻게 할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분이 “아주머니, 왜 그렇게 급하게 먹어요? 좀 천천히 잡수세요…”하고 한마디 했다.
​​내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는데 일행의 말을 듣고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급하게 먹어? 그러다가 체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내가 거들었다.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내의 얼굴이 확 굳어지면서 숟가락을 식탁에다 탁 내려놓았다. “그동안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다가 밥을 좀 먹겠다는데 왜 이렇게 간섭들이냐고!”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는 마음여린 아내의 갑작스럽고 황당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작심을 하고 시작한 한 달 동안의 배낭여행에다 부부간의 사랑을 자랑이나 하듯이 손을 꼭 잡고 다녔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불과 10여초가 지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 많은 것을 생각했다.
​“세진 엄마, 내가 잘못했소. 나는 세진 엄마가 급하게 먹는 모습이 너무 걱정스러워서 한 말인데, 그게 섭섭하게 들렸다면 나의 속마음과 상관없이 내가 전적으로 잘못했소” 하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사죄했다. 그 순간에는 ‘나’라는 게 없었다. 주위의 식탁에는 일행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들에게 보일 나의 처량하고 초라한 모습도 별로 생각되지 않았다. 아내는 조금 먹다 남은 육개장과 된장찌개를 더 이상 먹지 않았다. 결국 여행 중 몇 번이나 걱정 같은 간섭을 한 일행이 휘발유를 부었고, 내가 불을 붙인 것이었다. 그때 '저 사람은 그렇게 먹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아내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도리어 많이 먹으라고 했으면 좋았을텐데.
​내가 중생인 것은 무명(無明) 때문이고, 무명은 탐진치 삼독심이 원인이고, 삼독심의 원인은 결국 '나'라는 상(相)이 원인이라고 하셨다. 나를 내려놓고, 내 것을 내려놓고, 나의 생각을 내려놔야 한다. 
나는 올해부터 유무념 조항을 새로 만들어서 실천해 보기로 했다. 유무념 조항은 '나는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는가?'였다. 나를 내려놓는 방법으로 그동안 나만을 우선했던 이기적인 내가 2순위가 되고, 상대방을 1순위로 하는 것이었다. 그날 한국식당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아내에게 화나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래서 유무념 대조 결과 무념이 1건이었다. 그러나 나의 입장을 완전히 버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수습한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래서 유무념 대조 결과 유념이 1건이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큰소리로 말하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오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감상(感想)도 얻었다. 나의 부족한 인격으로 날벼락을 맞고도 기분 나쁜 기억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었음은 원불교의 가르침이 큰 비결(秘訣)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2014.4.9)

 

 

11월10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