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은 최고의 기회다
상태바
역경은 최고의 기회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1.22 10:09
  • 호수 1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익타원 유성신
오덕훈련원 원장

 

지난밤 요란한 폭풍우에 속전속결로 가을 낙엽이 멈추지 않고 수북이 내려왔다. 그토록 찬란하던 오색빛 찬란한 나뭇잎들은 자취없이 사라졌다.  빗물 머금어 앙상하고도 가지런하게 서 있는 산자락은 어제의 명색을 감추고 이미 피안을 건너가 버렸다. 
하늘빛은 한없이 청명하고도 해맑아 더 높이 올려다볼수록 눈이 부시고, 잣나무향 그윽한 청량한 공기를 머금으면 어두운 그림자 멀리 사라지고 속세의 허물 벗는 미소가 흐른다. 
 하룻밤 사이에 마치 마라톤 경기라도 출전할 것 같은 흔들림 없는 비장하게 준비된 초겨울이다. 한여름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바삐 서둘러 뛰듯이 혹한이 찾아올 겨울준비로 도량 안팎에 비상이 걸렸다.  무밭에 무를 수확하고, 화분은 실내에 들여오고, 전면 유리창엔 뽁뽁이를 붙이고, 연료를 구입하고, 실외 수도를 감싸며 한시름을 놓았다. 
며칠 후 현관 입구 절구통에는 검지 손가락 두마디 정도 두께의 얼음이 얼어 두둘겨도 여간 깨지지 않는다.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얼마동안 훈풍으로 화려한 꽃과 무성한 잎을 피워냈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은 그 결실을 거두었다면, 겨울은 멈추고 기다리며 뿌리에 그 힘을 함축하는 계절이다. 맺어진 환경과 인연으로 인생의 상승기가 있었다면,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는 하강기에는 멈추고 기다리며 인내해야 한다.
한잎 한잎 떨구어 버리고 무문관에 드는 강추위속의 나무들을 보라. 단단하게 옷을 입고 안으로 안으로 보이지 않는 고귀한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은 무저항의 깊은 삼매 속에서 이루어진다.
유럽에는 태양의 흑점활동으로 극심한 추위가 있었던 소빙하기 시기가 있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으로 평가받는 스트라디바리라는 불멸의 명품 악기는 이 시기에 자란 나무로 탄생시켰다고 한다. 이는 한파로 나무의 성장이 느린 탓에 나이테가 일정하게 촘촘하고 단단하며 나무의 재질이 빛나고 예리하여 천상의 음색을 지진 역사상 최고의 악기로 평가받는다. 
인생에서도 오는 역경을 잘 수용하면 변화의 최고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어려운때일수록 의식주에 단순해지고 여행 취미 소비와 사치 등으로 누리던 것을 최대한 내려 놓아야 한다. 그러나 응축된 힘을 모아 한길로 오롯하게 가는 서원의 길에 있어서는 불붙는 심지의 간절함만은 놓지 않고 챙겨야 한다. 
체면과 명성, 화려한 유희의 감각으로 잠시 얻은 것들은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사람도 돈도 교화도 안간힘을 써서 잡으려 하나 집착하면 오래 머무르지 않으며 더 많이 잃게 된다. 
겨울은 육근문을 닫고 근본 뿌리에 힘을 모으고 욕망을 놓아 버리는 나 없음의 길로 가는 계절이다. 최고의 보물은 진정 보이지 않는 것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그 눈을 뜨기 위해 우리는 진리의 길을 걷는다. 공부인에게는 위태롭고도 절박한 절대절명의 순간일수록 모든 것은 열린 기회가 된다. 

 

11월 24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