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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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진, 주산종사 (33)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1.22 10:54
  • 호수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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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년기(출가후반기)
11) 반야심경 ⑥-원기 26년(1941, 35세, 18곡 필첩)
특히 관지에 「선원창설후 삼회 결제일 직양합장」이라 하시고 인장까지 곁들인 탁월한 작품이다.  

「황가봉, 법명 이천(二天)」, (1902-?) 순사가 황등주재소에서 4년간 근무하고 이리 경찰서로 전입할 때 였다. 그동안 무척 다정하게 지냈던 용단리의 80된 류씨 노인으로부터 송별 기념으로 자첩을 선사 받았다. 사방 8촌 크기의 이명필 자첩은 창암 이삼만이 쓴 것으로 … (중략) … 황가봉은 이리본서의 명령으로 불법연구회 사찰 명령을 받고 총부 구내에 설치된 북일 주재소에 근무하게 되었다. 황 순사가 … (중략) … 성주 3편을 써서 벽에 붙여 놓았는데 소태산이 보고 물었다. “누가 저렇게 썼느냐” “제가 썼습니다” “잘 썼다, 저걸 날 주소, 나도 한 장 써 줄테니 그리 알아” 송도성이 벽에 붙은 글씨를 정중히 떼서 말아 가지고 갔다. 다음날 황순사는 창암 자첩을 가지고 총부 사무실에 갔다. 자첩을 보고 주산종사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였다. 자첩의 글씨체도 명필이었지만 담김 글귀의 뜻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것은 우리의 보물이여! 일원상의 종지가 아닌가! 하고 극찬을 하고 조실에도 보고하고 『회보』에도 소개하였다. 황순사는 자첩한자 한자의 글씨만 보았지 글귀의 내용은 관심두지 않았는데 이렇게 귀한 글을 자신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데서 기분이 매우 우쭐해졌다. 『회보』41호(1938. 1)에 「고인시초」라는 제목으로 그 글귀가 소개되니 「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 석가유미희 가섭기능전」이란 내용이었다. 

자각선사의 이 글의 뜻은 
옛 부처님 이 세상에 나기 전에는 
어려 있는 한 개의 일원상 뿐이로다 
석가 세존 부처님도 표현치를 못하셨거늘 
가섭 존자 어찌 능히 전하였어랴 

이 글귀는 이듬해 「일원상 유래와 법문」과 원기 28년 『불교정전』 책머리에도 소개되었다. 
주산종사는 황 순사를 만나면 반가운 얼굴로 “내가 감기 기온인 때도 그 자첩만 보면 감기가 달아납니다.”하고 기뻐하셨다. 그래서 황순사는 자청해서 불법연구회에 그 자첩을 기증하였다.」
이 내용으로 보아 우연히 얻은 창암의 필적, 특히 전북의 명필을 넘어 중국에까지 명성이 알려졌던 창암의 글씨에 일원상의 종지가 담긴 것이었으니 주산종사가 흠로하고 소중히 여겼음은 일화를 통해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이 필첩이 어디에 있는지는 현재 알 수 없다.  

 

1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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