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토닥 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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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며 토닥 토닥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1.29 11:28
  • 호수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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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타원 안혜연
금천교당 교무

 

눈이 내렸었다. 5급교무 자격검정고시를 치르기 위해 익산 총부로 가야 하는 하룬가 이틀을 앞둔 날이었다. 고시생인 우리가 비닐포대 를 찾아내 썰매를 만들었다. 학교 본관에서부터 식당까지는 비닐 썰매를 타기에 안성맞춤으로 적당히 경사가 진 길이었다. 출가 서원을 하고 영산선학대학교에서 수학하던 시절,  이맘때 쯤이면 생각나는 추억이다.
삼밭재, 정관평, 대각지, 탄생가, 옥녀봉…, 발길 닿는 곳이 전부 성지였던 영산이다. 잔뜩 수도인의 티를 내고 싶어 염주를 돌리며 발길 닿는대로 산책을 했고, 가끔씩 라면을 들고 삼밭재에 올라 기도를 했다. 저절로 대종사님과 선진님들을 생각하며 살게 되는 때였다. 
고시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모두의 배려가 충만했던 4학년, 가장 은혜로운 시기였다. 오직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때였다. “열심히 공부한 자여! 바람을 쐬자!” 라는 당당한 이유로, 가끔씩 자전거로 법성포 까지 나가 짜장면을 먹고 돌아왔다. 쉬는 시간이면 누군가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강의실 한쪽엔 선배교무님이나 지도교무님들이, 공부하며 먹으라고 사다준 간식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먹고 놀고 먹었던 추억이 우선인 것 같긴 한데,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다. “나 출가하기 전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출가 못했을 것 같애, 엄청 성적 좋아서 명문대 갔을지 몰라.” 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머리로 익혔던 경전속의 말씀들이 가슴으로 받아 들여지던 느낌이나, 예전에 알고 있던 경전의 의미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지거나 새롭게 알게 될 때면  “아하! 그말씀이 이 말씀이었네…”라며 혼자 기뻐하던 경험은 아직도 날 가슴 뛰게 한다. 정신과 육신이 모두 행복과 은혜로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아 ~ 이렇게 행복한데 왜들 출가를 안하는지….
가끔 그 시절이 아주 간절히 그리워질 때는, 출가의 여정에 그때의 행복으로 충전이 필요할 때이다. 시퍼렇던 초심은 어디로 갔나’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영산시절을 떠올리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 갈 수 없다는 아쉬움에 가슴이 저리기도 하지만, 그 아픔이 싸늘한 영산 바람처럼 날 다시 깨어나게 한다. 
‘올해도 다 갔네…’ 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여 보자. 
‘모두의 인생이 언제나 행복하기만 할 수 있겠어? 때론 세상을 다 내 것 삼은 듯 하다가, 그냥 덤덤하기도 하다가, 힘들 때도 있는거지. 항상 행복해 봐. 그게 행복인줄 모를걸. 지금 행복하다면 맘껏 누려. 지금 행복했던 기억에 기대고 싶어질 때가 있을거야. 지금 힘들다면 기억 창고로 가 봐. 날 새 힘 나게 할 어떤 기억이 있을 거야.’  
삶은 다양한 순간으로 꾸며질 수 밖에 없고 순간 순간은 모두 의미가 있다. 우리 모두 잘 살았다.

 

12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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