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년기(출가후반기)
달마도(전신상)
이 달마도 전신상은 정고선님이 영산선원에서 받은 것으로, 원기 30년(1945, 39세) 2월 총부 총무부장으로 부임할 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박용덕 교무는 『주산일대기』에서 「1945년 2월의 일이다. 영광 지부장 주산종사가 총무부장으로 전임할 때 영산학원생으로 있던 정고선이 보던 책과 일용품을 룩색에 담아 짊어지고 따라 나섰다. …(중략) … 장성역에서 표를 사서 개찰구를 나서는데 순경이 정고선의 룩색을 조사하게 되었다. 룩색에는 책이며 주산종사가 써 준 친필액자며 무명양말 몇 켤레를 압수당하고 홀홀단신 이리역에 내려 이역 타향에서 주산종사를 만나자 눈물이 핑 돌았다.」 라고 하여 작품시기를 방증하고 있다. 선재는 「답번지축지무동 추도천궐천갱고 직양제」이며, 인장이 찍힌 매우 간결하면서도 맑고 고운 작품이다.
주산 달마도는 대종사께서 부안 변산 봉래정사 재세하실 때인 1919년부터 1924년 사이에 월명암 백학명(1867~1929)선사와 교유할 때 학명선사의 필의를 본받은 것으로 원불교 선화의 효시라 할 수 있다.
학명선사 달마도 선재에, 「답변지축지부동 추도천궐천갱고 이부철선귀소실 지금천하기풍도 임술증추 월명백학명) : 지축을 밟아도 땅은 움직이지 않고, 하늘은 넓어져도 하늘은 더욱 높네. 철선(쇠배)을 타고 작은 방에 돌아오나 이제야 천하에 파도가 이는 구나. 1922 가을, 월명 백학명」 이라 전하고 있는데, 주산종사의 선제도 학명선사의 앞 구절을 인용하여 「지부동」을 「지무동」으로 쓴 듯하다.
주산종사의 달마도와 관계하여 범산 이공전은 「주산종사의 인간상」추모글에서, 「그 어른께서 달마상을 그리기 시작하신 인연 설화도 퍽 재미가 있다.
봉래정사에서 시봉하시던 10대 후반기, 하루는 월명암에 가시었는데 때마침 학명스님이 달마상을 여러 장 그리고 계시었다. 옆에 앉아 그것을 바라보고 계시던 그 어른께서는 스님이 잠깐 밖에 나가신 틈에 당신도 얼른 한 장 그려 보았다. 스님이 돌아와 보시고 감탄하시며 어디 몇 장 더 그려보라고 권하시었다. 몇 장을 계속 그리어 스님의 칭찬을 거푸 들으시고는 그 후부터 달마 화가가 되기 시작하셨다 한다.」라고 하였다.
1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