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대종사님 서울 교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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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대종사님 서울 교화의 의미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2.13 11:01
  • 호수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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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김봉환 경인교구 수원교당 교도

 

대종사님 서울(京城) 교화의 의미 원불교 서울교구에서 주관하는 『소태산 서울교화 100년 발자취 특강』에 참석하여 길산 방길튼 교무님으로부터 직접 집필한 「소태산 서울(京城)을 품다」라는 교재를 중심으로 한 특별 강연을 들었다.
대종사님께서는 익산 총부를 건설하던 해인 원기 9년(1924년) 3월 30일에 처음 서울(당시 京城)을 방문하신 이후 열반하신 해인 원기 28년(1943년)까지 19년 동안 100여 차례 방문하시어 서울교화에 심혈을 기울이셨다. 원기 원년(1916년) 대각을 이루신 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 표어를 천명하시었다. 대각을 통하여 이미 꿰뚫어 보신 인류의 물질문명 개벽 현장을 서울에서 직접 확인하시는 기회로 삼으셨고, 그와 관련된 수많은 법문을 내려 주시었다. 또한 대종사님의 크신 뜻을 오롯이 받들어 모신 초창기 서울의 혈성 제자들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 후진들은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편안히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일제는 조선을 영원히 식민 통치하고 조선의 식량 등 모든 물산을 착취하기 위한 정책을 자행하던 시기였다. 1919년 3·1 독립만세 운동 이후 ‘무단통치’만으로는 조선을 지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일제는 겉으로는 소위 ‘문화통치’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경성을 동경에 버금가는 대도시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서양 문물을 들여와 대규모 박람회를 개최하였고, 기차와 전차를 설치하는 등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보아 엄청난 물질문명으로의 대전환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후천개벽 시대에 대종사님께서는 대각을 이루시고 세상을 바라보시며 물질이 개벽 됨에 따라서 정신을 개벽하지 않으면 일체중생이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할 것을 통찰하셨던 것이다. 경성을 내왕하시며 과학 문명의 발달로 물질문명이 개벽 되어 가는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시면서 보고 듣고 느끼신 것을 응용하시어 정신개벽의 필요성에 대한 수많은 법문을 남겨주셨다. 당시 경성에서 제자들에게 내려 주신 법문은 큰 깨달음을 얻으신 성자의 지견으로 내리신 법문이기도 하지만 과학의 발달에 따른 물질문명이 급속히 개벽 되어가는 경성 현장을 직접 보시고 체험하신 것들을 감각감상을 통하여 내려 주신 법문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종사님의 경륜과 포부가 정전 총서편 「개교의 동기」와 「교법의 총설」에 모두 담겨 있다.
우리는 이제 원기 109년 대종사님의 서울 교화 100주년을 앞두고 대종사님의 성적지를 따라 대종사님께서 왜 그렇게 서울 교화에 심혈을 기울이셨는가를 생각하고 느끼며 관련 법문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한 구절 한 구절 실행해 나가는 것이 대종사님 은혜에 보은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12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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