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의 마음일기] 마음일기 17. 역경보살과 순경보살
상태바
[중산의 마음일기] 마음일기 17. 역경보살과 순경보살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2.13 11:54
  • 호수 13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부산의 농협에서 근무하다 승진하여 거제도로 발령받아 간 게 1984년도 서른 한 살 때였다. 어린 나이에 승진해서 나이 50대인 부하 직원들과 함께 근무를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 고등학교 동기생인 친구 하나가 승진해서 거제도로 왔다. 그 친구가 온 이후 그는 나와는 물론 거제도 토박이 직원들과 사사건건 부딪히기 시작했다. 외지에 와서 나이 어린 책임자가 된 친구 사이에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몇 개월간 깊이 고민했다. 그러다가 거제도를 떠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에 서울에서 거제도로 내려와서 근무하다 상경한 직장 상사와 의논해서 서울로 인사이동 신청을 냈다. 사실 서울은 일가친척 한 사람 없는 곳이었다. 단지 상극의 인연으로 변할 것 같은 동기동창 직원과 떨어지기 위함뿐이었다. 그렇게 1985년 11월에 개점하는 서울 목동오거리지점 개점 요원으로 발령받은 나는 지금까지 32년간 서울 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다. 
오늘 새벽에 아내가 말했다. 만약 지방에서 살았다면 우리 아이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보내는데 하숙비에다 잡비로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갔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났다. 비록 그 때는 잠을 설치면서 힘들어했지만 그 친구 덕분에 이렇게 서울에서 강남교당에 다니면서 잘 살게 되었으니 그 친구가 얼마나 고마운가! 
어제는 대산 종법사님의 법문집을 읽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법문이 있었다.
 ‘수도인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위대한 두 보살이 지키고 있다. 그 하나는 역경보살로 일체 마음을 거슬려서 부지중에 그 도력을 증장시켜 주고, 또 하나는 순경보살로 일체 마음을 달게 해서 부지중 그 도력을 증장시켜 주는 것이니, 이 두 보살이 성불제중을 시키는 큰 권력을 가진 것이다.’ 
나를 서울로 보내 준 그 친구는 분명히 역경보살님이었다. 그리고 또 한 보살님이 옆에 계신다. 그건 바로 아내 보살님이다. 아내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순경보살님이다. 그런데 보살님이 가끔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듣기 싫은 말을 듣고 있는 나는 저 사람을 부처로 보고 있는가? 그 순간 나의 마음에 아내가 부처로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진정한 처처불상을 보지 못한 것이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아내로부터 듣기 싫고 거슬리는 말을 듣게 되어 내가 더 노력하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경우 그때 아내는 분명히 역경보살님이 된다. 아내 말고 누가 나에게 아직도 공부가 부족하고 변한 게 없다고 말해 주겠는가. 그래서 아내는 대체적으로 순경보살이면서 때로는 역경보살이 될 때도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분들이 알고 보면 나를 더욱 발전하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해 본다. 
중학교 동기인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내 인생의 종점에서 늘 가고 싶던 곳,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작은 집 한 채 지어놓고 텃밭에 씨 뿌리고 호박 배추 가지 고추 따서 먹고 밤이면 별빛 달빛 벗 삼아 잠들 수 있는 곳 이런 곳에 살고 싶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의 심경을 적어봤다. ‘내 집이 법당이요, 내 가족이 보살이며, 저 멀리 앞산이 나의 정원이니 굳이 멀리 떠나 극락을 찾으리요…’   (2017.7.8)

 

 

12월 15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