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으로 가는 겨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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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으로 가는 겨울산
  • 한울안신문
  • 승인 2023.12.21 13:19
  • 호수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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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타원 유성신 오덕훈련원장

 

털신을 신고 터벅 터벅 눈길 헤치며 뒷산을 오른다. 파란 하늘에 맞닿은 능선은 설화가 만발하여 산이 나를 자꾸 손짓하며 저 높은 곳으로 부른다.  
제법 내린 겨울비가 극한의 추위속에 천둥 벼락같이 흘러간다.  얼음 터널을 이루며 흐르는 계곡물이 바위와 나뭇가지에도 도톰하고 기이하게 얼어붙어 수정처럼 빛난다. 
물길 옆에 서 있는 가냘픈 나무 한 그루에 물방울이 얼기설기 얼어 온통 얼음으로 뒤 덮혀 있다. 꽃이 피고 연록잎 피어나는 매혹의 향기가 곧 인고를 딛고 일어서는 이 고귀한 생명력에 있었다. 생명의 잉태란 극한을 벗어나는 니르바나의 환영歡迎속에 갊아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강인함 앞에서 모든 분별이 그대로 멈추어 버린다. 
꽁꽁 얼어붙어 숨죽이는 겨울 산은 극점에 도달하여 지극히 평화롭고 한적하며 고요하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겨울이란 계절에 꼼짝없이 머물러 있어야 새봄의 다음 순간이 온다. 
나는 세상에 유용한 도구인 도자기의 탄생 과정을 오랫동안 눈여겨 본적이 있다. 그릇을 흙으로 빚어 초벌을 굽는다. 그 그릇에 유약을 발라 가마에 넣고 켜켜이 쌓아 올린 후 3일 밤을 지새우며 긴 시간을 멈추지 않고 1,300도의 고열에서 굽는다. 그 굽는 과정에서 창구멍을 통해 도자기에 바른 유약이 녹아 내리는 것을 지켜보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환상의 빛에 매료가 된다. 고열에 도자기가 이글거리는 빛과 그 주변에 타오르는 불빛은 눈부시게 맑고도 밝은 주홍색의 한빛이다. 가마에 가두어 쉼 없이 지피는 그 최상의 온도는 그릇과 불빛이 하나의 빛으로 활활 타오른다. 비로소 몸체에 바른 유약이 흘러 내리며 바람과 불의 조화로 각기 다른 얼굴빛의 그릇이 된다. 그리고 단단하게 굳어서 견고하고도 세상에 쓸모있는 그릇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생명력의 본질이며 거기에 머무는 것이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도 어쩌면 생사를 초월한 나 없음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힘이 있는 자는 그 어떠한 상황이 와도 두렵거나 거부하며 도피하지 않는다. 거기에 머물러 더 이상 분별이 끊어져야 나를 잊은 자리에서 참나가 드러난다.
그러나 중생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옳고 그르고, 선하고 악하고, 크고 작고, 깨끗하고 더러운것에 분별 지으며 괴롭고 즐거워한다. 아무리 견딜 수 없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 잊혀져간다.  
내가 자신할만한 힘을 갖추어야 늘 분별망상속에 흔들리고 방황하는 늪에서 벗어난다.
산등성이를 힘차게 딛고 오른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 두피를 파고드는 시린 바람을 마주하며 모든 생각이 멈추었다. 우리가 지금 현재 머무는 이곳이 지혜를 밝히는 최상의 조건이며 열반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오덕에서 온 편지>는 유성신 교무님이 원기 106년 6월 24일 부터 오늘까지 34회라는 긴 일정동안 옥고를 보내주신 정성심으로 진행되었고 이번호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12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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