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뒤집어 보려 합니다
상태바
새해에는 뒤집어 보려 합니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1.03 16:59
  • 호수 1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기 109년 경기인천교구 신년사

유산 전종운 교의회 의장

시골길을 가다보면 가끔씩 마을 어귀에 ‘바르게 살자’라고 새겨져 있는 비석과 마주치곤 합니다. 약간 삐딱한 마음으로 바라보자면 ‘이 마을 사람들은 얼마나 바르지 못하면 바르게 살자고 비석에까지 새겨 놓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옳다, 그르다는 것은 누가 정했을까요? 우리는 왜 그 정해진 대로 따르는 것이 바른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또 옳고 그름의 틀에 갇혀 바르지 않은 것을 배척하고, 바른 것만을 수용하면서, 바름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뒤집어 살아보려 합니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시간의 개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시간이 앞으로 흐른다는 것을 부정하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마치 과거에 하늘이 돈다는 천동설이 지구가 도는 지동설로 뒤집힌 것처럼 시간이 앞으로 흐른다는 것도 언젠가는 뒤집힐지도 모를 일입니다.
뒤집기 선수는 아마도 부처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본래 생함도 멸함도 없다고 뒤집고, 이렇게 멀쩡히 육근을 작용하며 살고 있는 나를 그것은 내가 아니라고 뒤집고, 확연히 차이 나는 중생과 부처를 본래 하나라고 본래 없는 그 자리로 뒤집어 버리는 뒤집기 달인입니다. ‘나’라는 상을 뒤집고 ‘법’이라는 상을 뒤집고 그래서 당연하다고만 알고 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렇게 뒤집어 보면 ‘옳음’이 ‘그름’이 될 수 있고, ‘그름’이 ‘옳음’이 될 수도 있어 바름만을 고집할 수 없게 되어, 옳고 그름으로 대립하는 대신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고 ‘고’와‘낙’ ‘죄’와‘복’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그래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마음의 자유를 누리며 영원한 극락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교단과 교당, 우리 각자 각자는 수많은 희망찬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 수많은 시.비.이.해를 마주하며 때로는 감사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 바른 것, 옳은 것을 찾아갈 것입니다.
뒤집어 봅시다.
뒤집어 살면 나만의 세상 속에 있는 ‘바름’과 ‘옳음’ ‘당연함’을 고집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음을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이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가 될 때, 우리의 요란하고 어리석고 그른 마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원만한 사람이 되어 넓은 지견을 얻고자 하면 반드시 한편에 집착하지 말라. 한 편에 집착하면 원만한 도를 이루지 못한다]는 법문을 새기며 뒤집어 사는 삶으로 집착을 항복받아 보렵니다. 
   원기 109년 갑진년에도 재가·출가 교도님들께 법신불 사은님의 은혜와 위력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월5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