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의 마음일기] 마음일기19 제수씨가 부산에서 택배로 보내준 청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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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의 마음일기] 마음일기19 제수씨가 부산에서 택배로 보내준 청바지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1.17 18:39
  • 호수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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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제수씨가 택배로 보낸 유명 골프브랜드 청바지가 도착해서 입어보니 몸에 딱 맞았다. ​며칠 전에 부산의 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제수씨가 내가 입을 청바지 하나를 봐 놨는데 허리 사이즈가 얼마나 되는지 묻는 전화였다. 지금까지 누구로부터 옷을 선물 받은 적이 없었기에 참으로 기쁘고 고마웠다.
​지난 3월 11일은 부모님의 합동 열반기념제가 강남교당에서 있었다. 5남매의 가족이 모두 모여서 교무님 세 분을 모시고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냈다.  
사실 제사는 그날이지만 며칠 전부터 우리 집은 비상이 걸렸다. 아내가 갈비재료를 준비하고, 양재 하나로마트에서 마른나물을 사고, 배추를 사서 겉절이를 하는 등 난리였다. 이번 제사는 3월 11일이 일요일이어서 부산에 있는 동생부부와 진주에 사는 여동생 부부가 하루 전날 서울에 와서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어 저녁, 아침, 점심 세 끼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작년에도 부산 동생 부부가 토요일날 제사를 지내고는 우리 집에서 많은 가족이 저녁을 먹고, 말죽거리에 있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맘껏 부른 후 우리 집에서 자고 다음날 부산으로 갔었다. 올해는 여동생 부부까지 우리집에서 자게 되어 큰방은 남동생 부부, 중간방은 진주 여동생 부부가 자고, 우리 부부는 제일 작은방에서 잤다. 
우리집에 있는 가장 예쁜 이불을 동생들 부부에게 양보했고, 토요일 날 저녁 메뉴와 일요일 아침, 점심 메뉴에 남동생이 좋아하는 갈비, 매제가 좋아하는 육개장, 여동생이 좋아하는 새콤달콤 도라지 무침 등을 준비했다. 그래서인지 동생들 부부가 너무 행복해 했다.
​우리 형제들은 지금은 참으로 좋은 관계이지만 어릴 적에는 그렇지 못했다. 나에게는 우리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동생이 둘 있고, 작은댁 두 사람으로부터 태어난 동생이 셋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본처 자식으로 장남이며 동생들이 다섯 명이나 되는 것이다. 
내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시골에 두고 작은댁을 얻어서 부산에서 살았고, 내가 중2 때 둘째 작은댁이 가출한 후 세 번째 작은댁을 얻어서 살았다. 어릴 때의 그 삶은 정말 막장 드라마로, 작가가 내용을 마음대로 비틀어 놓은 것 같았다. 무슨 일만 생기면 아버지와 세 자식이 한 편이 되고, 나와 어머니, 두 동생이 한 편으로 쫙 쪼개지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고1 때 원불교를 만났고 스무 살 때 양산 김중묵 종사님의 인과법문을 받들면서 나의 모든 괴로움이 내가 전생이 지은 업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인과를 마음으로 가슴으로 수용하는 데는 3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나는 어릴적에 아버지와 만날 때는 아버지에게 따질 내용을 머리속에 단단히 정리해서 준비했지만 아버지만 보면 거대한 바위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어렵고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을 따라 강자였던 아버지는 약자가 되었고, 약자였던 나는 50대의 강자가 되었다. 내가 갚을 차례가 되었을 때 그 업을 다시 갚지 않고 상생으로 돌린 것이다. 우리 형제들은 지난날 상극의 인연을 상생으로 돌리기 위해 서로가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배 동생과 이복동생이란 것도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모두가 사랑하는 동생일 뿐이었다. 이런 관계로 전환하는 데는 자기의 몫을 챙기지 않고 오직 동생들을 위해 양보하는 아내의 공이 컸다. 그래서인지 부산의 제수씨가 우리 부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으로 청바지를 구입해서 보내준 것이었다. 다시한번 제수씨에게 감사드린다

 

1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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