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근본을 다스려야 성공한다
상태바
[독자기고 ]근본을 다스려야 성공한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1.24 12:50
  • 호수 1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교당 김대은 교도

 

괴뢰(傀儡)라는 뜻의 꼭두각시는 남의 조종에 따라 의타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대체로 인간은 자신이 부림을 당하는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그 곡두와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그리고 이 분열된 자아를 통하여 마음에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세상과의 교섭을 시도하고 상대와의 교제를 도모하지만 삶의 모든 번민과 비극은 거기서부터 비롯된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드러내는 각양의 활동과 각종의 생각은 절대 또는 근원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중생의 일상은 진정한 실제가 아니라 번뇌로 점철된 혼란과 갈등의 연속 상태며 무시이래 분열되고 조작되어 온 그림자 놀이에 불과하다. 하늘 높이 솟는 연(鳶)이 의식이 있다면 마치 거나하게 도취되어 허술한 착각에 빠진 군중처럼 그는 그 공중으로의 추진과 허공에서의 들림을 자신의 의도와 의지가 개입된 자발적 움직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이 착각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깊은 안목과 비상한 성찰이 요구된다.
피부에 발생하는 각종 이상 증세를 당장의 수술이나 일시적인 시술로만 제거하거나 약물이나 화장품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증상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을 추적하여 치료하지 않으면 반복되는 재발은 예정된 수순일 가능성이 높다. 어디 피부만 그런가? 마음의 병도 그 본원을 찾아 고치고 그 근원을 치유해야 온전한 회복이 가능하다. 불안과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기 위해 술에 일방적으로 의지하거나 마약에 만성적으로 의존하는 행태가 종국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수레가 움직이는 것이 말이 가는 것인지 수레가 가는 것인지 물은 것은 ‘근저’의 중요성과 ‘본질’의 가치를 염두에 둔 언설이다. 수레가 불건전한 상념에 포획되고 육진에 감염된 자아라면 말은 청정한 정신에 경도되고 무상에 기반한 본래적 자아에 비견된다. 오랜 무명으로 타락하고 깊은 망념으로 변질된 자아의 준동은 결국 마차가 말을 끄는 것과 같이 인격의 완성과 마음의 정화를 한 치도 지향할 수 없다. 인간은 본래 정념 없고 윤색되지 않은 정갈한 백로였고 창공을 마음껏 누비며 비상하는 독수리였다. 우리는 이런 자아로의 회복을 통해서만 뒤틀리고 훼손된 자신의 상태를 근원적으로 직시하고 엉키고 혼란스러운 인생의 문제를 본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혜능의 5대 제자 가운데 한명인 남강회양은 참선을 통해 해탈에 이르고자 했던 마조에게 수레 바퀴를 쳐서는 소가 움직일 수 없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진리를 깨치고 부처가 되기 위해 행하는 일련의 소승적 명상이나 금욕적 생활이 마치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고자 하는 것처럼 자칫 부질없는 짓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좌선 등의 수련이 들뜬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외물의 침탈을 막으며 세속적 유혹을 제지하는 당장의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기초적인 방식으로만 깨달음에 이르고 부처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몸이 수단이라면 마음은 작용이다. 아무리 몸을 부추겨도 마음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다. 말을 채찍질하고 소를 이끌어야 바퀴가 돌고 수레가 구르듯이 근본을 찾아 다스려야 모든 일에서 성공을 볼 수 있다는 대종사의 말처럼 일의 성패는 마음의 운용 자세와 적용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성공은 따지고 가리는 생각을 거두고 취하고 버리는 태도를 놓는 그런 마음일 때 가능하다. 분별로 인한 종종의 장애로 수레가 뒤뚱거리지 않게 소나 말을 경계할 일이다. 

 

1월 26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