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또 한번의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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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또 한번의 새해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1.31 16:58
  • 호수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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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타원 안혜연
금천교당 교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시절. 매일 먹는 밥을 먹기 위해서도 매운 눈물과 함께 불을 피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명절에나 맛볼 수 있던  특별한 음식들은 며칠이 걸리는 것도 있었다. 손에 쥐어지지 않는 연필은 볼펜 껍질에 끼워서 다 쓰고 난 뒤에야 새 연필을 쓸 수 있었다. 그립고 보고싶은 누군가와의 연락은 오고 가는데 며칠이 걸리는 편지를 통해서였다. 
이제는, 전화 한통화로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인터넷 쇼핑이나 홈쇼핑 채널을 통해 원하는 물건을 하루 이틀이면 받아볼 수 있다. 그립고 보고 싶은 감정도 쌓을 필요가 없다. 전화가 있고 영상통화가 있다. 
기다림의 시간이, 우리가 맞이하게 된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반가움, 소중함을 키워가는 시간 일수도 있겠다 라는 사실을 철이 들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명절에 대한 기억의 시작은 기다림이다. 도시에 나가 공부하던 언니와 오빠를 기다렸다. 읍내에서 오는 버스가 올 시간이 되면 몇 번씩 담장 넘어 신작로를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실시간으로 어디만큼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휴대폰은 물론 전화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기다림의 근거는 집에 올수 있다는 편지와, 도시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면 몇시쯤 읍내에서 오는 버스를 탔을 거라는 짐작이 전부였다. 집에서 기다리는 것조차 조바심이 나면 버스정류장까지 나가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을 살피며 기대와 실망을 몇 번 하다 보면 그렇게도 기다리던 언니나 오빠가 내렸다. 
명절이 지난 후,  주섬 주섬 명절 음식이랑 이것 저것을 싸서 보내고 엄마는 서운함에 눈물을 비췄다. 먼지를 일으키며 가고 있는 버스를 보며, 북적이던 집이 갑자기 휑해지고 쓸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완전한 공감은 경험의 공유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나란히 채워진 필통.  누군가의 답장이 담겨있을 커다란 가방을 멘 우체부 아저씨. 부침개를 부치기 위해 마당에 걸리던 솥뚜껑. 명절을 앞둔 설레임과 명절이 끝난 후 허전함. 반가운 그 누군가를 싣고 오던 먼지 폴폴 나던 신작로. 이런 느낌의 완전한 공감은 경험으로 가능하다. 비슷한 환경에서 같은 시절을 지내온 사람을 만나면 끝이 없는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다.
진리의 세계 또한, 우리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해 할 수 밖에 없으리라. 
설날, 은혜롭게도 다시 새해이다. 다시 한번 소망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공부의 참 맛을 경험하고, 함께 그 경험을 나눌 법동지들이 많아지기를….


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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