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불락인과不落因果 대 불매인과不昧因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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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불락인과不落因果 대 불매인과不昧因果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2.28 17:23
  • 호수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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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당 김대은 교도

전생으로부터 비롯된 인과의 고리인 업은 실은 이른바 공성(空性)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업에 휘둘리고 업장에 가로막혀 수고를 앞세우고 고난을 뒤로 하며 지난 생에 지은 빚을 다 청산해야 한다. 이 사태는 불성을 지닌 존재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어느 날 설법을 마친 백장은, 한 학인이 위대한 수행자도 인과에 떨어지느냐는 질문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라고 했다가 말 한마디 잘못한 죄로 거죽만 인간일 뿐 오백 년을 여우의 몸으로 살고 있다며 구제를 바라는 어떤 노인의 하소연을 듣는다. 이에 백장은 “인과에 혼미하지 않다(不昧因果)”라고 일러주고 이 말뜻을 깨달은 순간 노인은 비로소 짐승의 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백장이 저녁 법단에 올라 이 일의 경위를 알리자 제자인 황벽이 나서며 만일 그 노인이 제대로 말했다면 어찌 되었겠느냐고 백장에게 물었다. 이에 백장이 알려주겠다며 황벽을 부르자 스승에게 성큼 다가서던 황벽이 스승의 뺨을 냅다 내리쳤다. 제자에게 뺨을 얻어 맞은 백장은 야만인의 수염이 붉다는데 그런 인물이 여기 있었다고 기뻐하며 손뼉을 치고 웃었다. 물론 그 오랑캐는 부처나 달마에 다름 아니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언설은 인과에 떨어진다는 정황을 염두에 둔 차별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말이다. 치열한 노력을 통해 인과의 과정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자유를 얻었다고 자각하는 순간에 그 몸과 마음은 또다시 인과에 직면한다. 철저히 깨쳐 인과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하는 순간에 노인이 여우 거죽을 덮어쓴 것처럼 모든 수행은 수포로 돌아가고 어떤 수도도 보람 없는 낭패로 귀결된다. 불락인과를 행위의 목적으로 삼는 순간 어떤 수단을 이용하고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인과에서 벗어나가는 요원하다. 
여우로 전락했던 노인을 구원한 ‘불매인과’는 부처와 여우가, 삼매와 일상이 하나라는 이치를 일깨운다. 내가 나비 꿈을 꿈 것인지, 나비의 꿈에 내가 등장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장자의 입장도 예컨대 현실과 비현실이, 이승과 저승이, 나와 상대가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모두 각각 절대의 세계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런데 마음이 흔들리고 격렬해지면 나를 중심으로 나비는 분별의 객체로, 비현실은 허상의 공간으로, 저승은 기피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자신이 당한 봉변을 갚아줄 차례에 참아 버리면 그 업이 쉬어지지만 갚아주면 상대가 다시 갚을 것이고 그러면 그 상극의 업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불화하는 부부가 내생에서 다시 인연 있는 사이가 되지 않으려면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다 두지 말고 오직 무심으로 대하라고도 일렀다. 상대를 대하는 마음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말고 어떤 자취를 두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애초에 원인을 없애거나 만들지 않으면 결과도 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심은 아무런 업보도, 어떠한 과보도 일으킬 수 없다. 
승자와 패자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채무자와 채권자가 대립을 극복하고 전일한 관계에 놓일 때 우리 마음은 분절과 이원화를 넘어 자발적 힘을 토대로 한 불사의(不思議)하고 공들인 보람과 능력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다. 진리를 찾겠다는 열정과 인과를 극복하겠다는 열망은 또 다른 지옥업을 짓고 쌓을 뿐이며 그래서 짐승의 거죽을 뒤집어 쓰게도 되는 것이다. 물론 우화지만 황벽의 기행은 이미 깨우쳤음을 알리는 스승에 대한 제자의 거칠지만 간곡한 신호였고 이에 대한 백장의 박장대소는 대견한 제자에 대한 스승의 호쾌하고 흐믓한 반응이었다.

 

 

3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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